[역사속 경제리뷰] 벚꽃축제
2025-04-04 어기선 기자
화전놀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화전놀이라고 해서 삼짇날 꽃을 구경하고 진달래꽃을 화전으로 부쳐 먹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고려시대는 장미연, 조선시대는 상화가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서 1910년대 초반 서울 우이동 지역을 중심으로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본래 조선시대 활을 만들기 위해 재료로 벚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1915년 우이동 벚꽃 명소가 매일신보 5월 7일자로 소개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일본인들에 의해 벚꽃놀이가 시작됐다. 하지만 우이동은 경성 도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경성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도심에 일본산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창경궁에도 벚나무를 심었는데 대략 300그루 정도였다. 그리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꿨다. 1933년에는 2천그루 이상이 됐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은 야간에 음주와 함께 밤벚꽃놀이를 즐기게 됐다. 그러면서 관광 연계 상품으로 개발됐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창경원은 벚꽃놀이의 명소로 유명했다. 하지만 1984년 창경원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복원하면서 일제가 식재한 벚나무를 과천 서울대공원 등에 이식을 했는데 일부는 여의도 윤중로에 이식되면서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의 기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