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벚꽃축제

2025-04-04     어기선 기자
사진=파이낸셜리뷰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벚꽃축제는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 전후로 해서 벚꽃을 주제로 해서 열리는 지역축제이다. 과거에는 여의도 벚꽃축제만 있었지만 최근 들어 각 지자체에서 벚나무를 심으면서 벚꽃축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벚꽃축제는 일본 하나미(花見)에서 유래됐다. 중국 당나라 시대 일본이 당나라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왕실에서 매화, 복숭아, 살구 등의 꽃을 구경하는 것이 시초가 됐다. 그러던 것이 헤이안 시대에 벚꽃으로 대체되면서 벚꽃놀이는 일본인들에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를 거치면서 하나미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이었던 1594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규모 하나미를 개최했는데 몰린 사람들이 5천명이 됐다. 그리고 에도 시대를 거쳤고, 근대화 이후 자국 문화를 전파하면서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벚꽃축제가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화전놀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화전놀이라고 해서 삼짇날 꽃을 구경하고 진달래꽃을 화전으로 부쳐 먹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고려시대는 장미연, 조선시대는 상화가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서 1910년대 초반 서울 우이동 지역을 중심으로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본래 조선시대 활을 만들기 위해 재료로 벚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1915년 우이동 벚꽃 명소가 매일신보 5월 7일자로 소개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일본인들에 의해 벚꽃놀이가 시작됐다. 하지만 우이동은 경성 도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경성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도심에 일본산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창경궁에도 벚나무를 심었는데 대략 300그루 정도였다. 그리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꿨다. 1933년에는 2천그루 이상이 됐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은 야간에 음주와 함께 밤벚꽃놀이를 즐기게 됐다. 그러면서 관광 연계 상품으로 개발됐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창경원은 벚꽃놀이의 명소로 유명했다. 하지만 1984년 창경원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복원하면서 일제가 식재한 벚나무를 과천 서울대공원 등에 이식을 했는데 일부는 여의도 윤중로에 이식되면서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의 기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