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참정권
2025-04-09 어기선 기자
원시공산사회에서
원시공산사회에서는 누구나 참정권을 갖고 있었지만 농업혁명 이후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고, 사회계급이 발달하면서 피지배층은 참정권이 상실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학계의 시각이다. 원시공산사회에서는 수렵채집 등을 통해 경제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냥감이 서식하는 장소를 알고 있거나 먹을 수 있는 식물의 대규모 자생지를 잘 찾는 사람들이 부각되면서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족사회가 되면서 그에 따라 지도자 계층이 생겨났다. 그리고 추장사회가 되면서 신분제도가 생겨났고, 추장의 권위가 신성불가침이 됐다. 국가사회에 들어서면서 그때부터 국왕 등 지도자가 백성을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서 계급사회는 더욱 뚜렷해졌다.군대와 연결되면서
국가사회로 들어가면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그에 따라 징병제와 참정권은 연결이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력이 권력획득의 수단이면서 공동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에 군대를 징발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상위계급이 됐다. 초기 고대로마의 경우 자유시민이 자발적으로 군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들의 참정권이 상당히 컸고, 그에 따라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군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황제로 전환됐다. 하지만 총기와 화약이 발달하면서 무력을 사용하는 계급이 몰락하게 됐고, 근대시민혁명이 이뤄지면서 용병제 대신 징병제가 실시되면서 참정권이 확대됐다.제1차 세계대전 겪으면서
이때만 해도 남성이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남성에게만 참정권이 부여됐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남성들이 군대에 나가자 그때부터 군수산업에 여성의 노동력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이에 여성들의 참정권이 부여됐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의 참정권을 얻기 위해 징병제 운동이 자발적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인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없이 동등한 대우와 조선인의 권익 향상을 요구하며 징병제와 참정권을 요구한 것이다. 다만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인 징병제와 참정권은 시기상조라고 보았다. 그러다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조선인 징병을 하면서도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앗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남녀노소에게 모두 참정권이 부여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