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4월 11일 인조반정 발생

2025-04-11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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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623년 4월 11일(음력 1623년 3월 12일)은 인조반정이 발생한 날이다. 광해군이 물러나고 인조가 권좌에 오른 날이다. 조선 4대 반정의 하나로 서인 반정 세력이 광해군과 대북 세력을 축출하고 왕의 조카인 능양군 이종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 및 추대한 사건이다. 핵심인물이 낮은 종3품 관직자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고, 인조 본인이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중종반정의 경우 중종은 반정이 일어난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신하들에게 추대돼 국왕으로 즉위했다.

농민경제가 붕괴되면서

광해군 말기에 궁궐 축조 등으로 인한 부세의 부담과 강제 노역 압박으로 인해 농민경제가 붕괴됐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광해군이 과도한 부역을 백성들에게 부여하면서 그에 따라 불만이 커졌다. 여기에 북인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서인들의 불만도 상당히 커져 갔다. 게다가 계축옥사 등으로 인해 명분을 서인들이 쌓으면서 그에 따라 반정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북인 제거가 시작됐다. 문제는 온건파 북인들도 제거 대상이 됐다. 그러면서 북인 세력이 완전히 퇴출됐다. 물론 이괄의 난, 박홍구의 역모 사건 등이 있었지만 인조가 확실하게 권력을 장악하면서 서인 정권이 탄생했다.

서인 친정 체제로

결국 인조반정으로 인해 서인 친정 체제가 됐다. 이로 인해 척화론이 득세했다. 그로 인해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백성들이 인조반정을 반겼던 이유는 광해군의 과도한 부역 등에서 해방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치가 심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즉, 서인들이 집권을 하면서 서민경제와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해왔다는 것이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광해군 시절 북인이나 인조 시절 서인이나 ‘도긴개긴’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결국 조선의 후기경제가 발달하는데 더욱 늦추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명나라에게 군량미를 매년 납부해야 하고,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게 조공을 해야 했기 때문에 경제적 피해가 막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