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화협옹주 화장품

2024-04-17     어기선 기자
사진=문화재청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 강경환)와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용재)은 지난 16일 국립고궁박물관(서울 종로구)에서 세계적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그룹(회장 이경수)과 함께 전통화장품의 연구개발과 이를 활용한 문화 콘텐츠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세 기관은 화협옹주묘 출토 유물분석과 문헌조사를 통해 전통재료의 성분을 복원하고, 인체 적용시험을 거쳐 현대식으로 제작한 화장품(미안고, 연지고)을 최초 출시했다. 조선시대 왕실 화장품 용기인 청화백자를 바탕으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이정용 교수팀과 코스맥스그룹 디자인 R&I에서 화장품 용기를 공동 개발하여 디자인 등록(3건)의 협업 성과도 이룬 바 있다. 세 기관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추가 협약을 계기로 전통 화장품 기술 개발 및 활용을 위한 공동연구, 화협옹주 화장품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연구사업, 교육·연구·홍보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화협옹주는

화협옹주는 조선 영조대왕의 서7녀이다. 영조 19년(1743) 2월 18일 옹주로 책봉되면서 ‘화협’(和協)의 작호를 받았다. 그리고 전국에 금혼령을 내렸는데 금혼대상은 11세부터 13세까지 소년이었다. 3월 11일 초간택, 3월 15일 재간택, 4월 2일 삼간택 이후 경기감사 신만의 아들 신광수를 부마로 간택했다. 그리고 4월 28일 가례를 올렸다. 화협옹주와 사도세자는 두 살 차이였는데 혼인의 순서가 논란이 됐다. 영조는 화협옹주가 먼저 태어난 누나이기 때문에 사도세자보다 먼저 혼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신하들은 장차 ‘대를 이어야 할’ 세자이기 때문에 사도세자가 먼저 혼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영조대왕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화협옹주가 먼저 혼인했다.

미움 받은 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따르면 영조는 자신의 자식들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고 편애하는 아버지였다. 모두 영빈 이씨의 소생인데도 화평옹주와 화완옹주는 귀애하고, 사도세자와 화협옹주는 미워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영조대왕은 장남 효장세자를 잃고 후계자가 될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렸는데 딸이 태어나면서 화협옹주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영조대왕이 사도세자도 크게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사랑하는 딸 화협옹주를 보러 갈 때 사도세자에게 뭐라도 물어서 대답을 받은 후, 귀를 씻고 양치질을 했으며, 그 물을 화협옹주의 집방향으로 버렸다는 것이 한중록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영조실록이나 일성록 등에는 화협옹주방에서 진 외상 빚을 모두 갚아주기도 했고, 화협옹주를 영조대왕이 일일이 챙겨줬다고 기록돼 있다.

요절하자마자

화협옹주는 20세 젊은 나이에 홍역으로 요절했다. 영조대왕은 요절했다는 소식에 화협옹주의 집으로 향했지만 신하들이 영조대왕의 건강 등으로 만류했다. 하지만 영조대왕은 자신이 몸이 아픈 것은 당파싸움 때문이지 딸이 죽어 슬펐기 때문이 아니라고 고함을 질렀다. 2016년 12월 28일 문화재청이 남양주에서 화협옹주 무덤을 발견했다. 유해는 발굴되지 않았는데 아버지 영조가 젊은 나이에 자신보다 먼저 떠난 딸에 대한 슬픔을 적은 글이 발견됐다. 아울러 석함에는 화장품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나오면서 왕실 여인들의 실생활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