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남해회사 거품사태

2024-04-24     어기선 기자
남해회사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남해회사 거품사태는 1720년 영국 왕국의 노예무역에 관한 특권을 가졌던 주식회사 ‘사우스 시(the South Sea, 이하 남해회사)’로 인해 발생한 거품경제 현상이다. 네덜란드의 튜립파동, 프랑스 왕국의 미시시피회사 거품사태와 함께 3대 버블 사태라고 부른다. 또한 오늘날 ‘거품경제’라고 부른 것도 남해회사 거품사태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것은 주식시장의 과열을 ‘남해’의 거품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 남아메리카 무역 전담

남해회사는 영국 정부의 남아메리카 지역 무역을 전담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다. 로버트 할리 백작이 세운 공기업이었다. 1711년 영국 정부의 부실채권과 증권 1천만 파운도를 남해회사 주식으로 전환하고 돈이 되는 노예무역을 독점하도록 특권을 줬다. 남아메리카를 장악한 나라는 스페인 제국이었으니 노예무역이 순탄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남해회사는 자본금을 까먹었다. 여기에 스페인과 영국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스페인은 영국 선박의 입항을 금지시켰다. 이에 남해회사는 노예무역 대신 금융쪽으로 눈을 돌렸고, 복권 형식의 채권을 판매했다. 당시 영국은 잉여자본이 쌓였기 때문에 불티나게 판매됐다. 그러면서 남해회사는 금융회사로 변신했다.

주식 일반에 공개 권리 얻어

남해회사는 영국 정부로부터 회사 주식을 일반에 공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자본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남해회사는 주가를 무리하게 오리기로 했다. 이에 스페인으로부터 남아메리카 지역 전 항구에 대한 기착권을 따냈고, 새로운 금광을 발견했다는 소문을 냈다. 이에 1천 파운드까지 치솟한다. 만약 1월에 남해회사 주식을 구입했다면 8월에는 10배 넘는 이득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남해회사 주식으로 자본이 몰리게 됐다. 당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로빈슨 크루소 저자인 대니얼 디포, ‘어느 난봉꾼의 일생’으로 유명한 판화가 윌리엄 호가 등 유명인들도 남해회사 주식에 투자했다. 뉴턴은 한때 평가이익이 7천파운드로 치솟았지만 2만 파운드를 날려야 했다. 반면 헨델은 주식을 저점에 사고 고점에 전부 매각하면서 100배 넘은 이익을 보았다.

다른 회사들도

남해회사가 엄청난 이득을 얻자 정부 허가를 안 받고 불법으로 주식을 발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시중에 주식 공급이 늘어났고, 주가는 떨어졌다. 이에 영국 정부는 1720년 6월 24일 ‘거품방지법’을 제정하고 무허가 회사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관료들이 주식이 오를대로 오르자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정부관료들이 주식을 팔아치운다는 소문이 돌면서 남해회사 주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동안 남해회사와 관련된 소문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 점차 판명되면서 주가는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엄청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영국 정부에 거세게 항의를 했고, 영국 정부는 남해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부 관료들을 처벌했다. 당시 재무부 장관은 런던탑에 수감됐고, 스턴호프 수상은 수상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결국 재정전문가 로버트 월폴은 사태 수습에 나섰는데 월폴이 수습에 나섰다. 그러면서 의원내각제가 어느 정도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공인회계사 제도와 회계 감사 업무가 시작됐다. 아울러 오늘날 ‘버블경제’라는 용어의 유래를 낳았다. 남해회사의 주식이 급등하자 ‘남해에 거품이 일었다’는 말이 나왔고, 이에 시장의 과열을 ‘버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