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5월 7일 이순신 장군 옥포해전 승리

2025-05-07     어기선 기자
KBS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592년 임진년 5월 7일(음력)은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 승리한 날이다. 조선의 첫 승리이면서 일본군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해전이다. 옥포해전의 승리는 23전 23승 신화를 이끄는 해전이면서 조선군만으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조선 백성들에게 각인을 시켜주면서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게 만들었다.

의주까지 밀려간 선조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은 부산을 상륙해서 북상을 한다. 일본군은 20여일 만에 한양으로 북진을 하는 등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당시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라좌수영 병력을 총동원해 당포 앞바다에서 싸워야 한다면서 이순신 장군에게 지원 요청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관할 구역이 아닌 경상 해역에 출전을 하는 것을 고민했다. 이에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5월 1일 전라좌수영으로 모이자고 했다. 그러나 당일에 이억구의 전라우수군이 도착하지 않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5월 3일 녹도 만호 정운이 이순신 장군에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된다면서 설득했고,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군만으로 첫 출정을 결심하게 된다. 이에 5월 4일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을 이끌고 출진했다. 포작선 46척은 어선에 불과한 비전투선이라고 한다면 사실상 24척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 수군 첫 사망자가 나온다. 그것은 전투가 무서워 탈영한 황옥천이라는 병사를 잡아 목을 베어 효수한 것이다. 5월 5일 당포에 도착했지만 원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원균에게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고, 그때야 원균은 1척의 판옥선을 끌고 나왔고, 그 이후 경상우수군 장수들이 3척의 판옥선과 2척의 협성을 이끌고 본대에 합류했다.

첫 승리

연합함대는 당포에서 한산도 북쪽을 지나 거제도 남단을 돌아 다대포에 숙영을 했고, 옥포로 진출했다. 그리고 5월 7일 새벽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완이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로 신기전을 발사했고, 이순신 장군은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고 산처럼 무겁게 침착하라면서 옥포로 진격시켰다. 조선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돼 있던 적선 50여척을 발견하고, 포위를 한 후 포구를 빠져나오려는 적선들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그리고 첫 승리를 일궈냈다. 이 싸움으로 조선군 피해는 부상자 1명에 불과했다. 다만 이후 2명의 부상자가 추가로 발생했는데 원균이 전공을 탐내면서 전라좌수군이 사로잡은 왜선을 빼앗으려고 활을 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군은 조선수군에게 대패를 했다. 그러면서 제해권 장악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조선 수군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게 됐다. 이순신 장군이 함포 사격을 임진왜란 전에 구상을 했지만 승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옥포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함포 사격으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이런 자신감은 조선 백성들에게 퍼지면서 의병들이 일어나게 됐고, 조선군 전체에게도 퍼지면서 이후 임진왜란의 전황이 바뀌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