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상표권 전쟁, 원조는 오리온...후발주자 롯데·해태·크라운
#오리온 초코파이 50주년 기념
2025-05-14 김희연 기자
전쟁의 시작
오리온 측은 90년대 후반 불만이 쌓여 뒤늦게 롯데를 비롯한 경쟁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하고 만다. 국내에서 ‘초코파이’라는 제품을 최초로 출시한 건 오리온이지만 법원은 여타 이유로 경쟁사의 손을 들어줬다. 한 가지 이유는 당시 오리온이 초코파이의 상표를 그냥 초코파이가 아닌 ‘오리온 초코파이’로 등록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롯데가 ‘롯데 초코파이’라는 상표로 등록해도 별문제 되지 않을 만한 상황이었다. 롯데가 초코파이를 출시하고 상표 등록을 했을 때 그 즉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또한 이미 대중들에겐 점차 '초코파이'는 초콜릿처럼 과자의 한 종류인 보통명사라는 인식이 자리했다. 현행법상 누구나 쓸 수 있는 보통 명사는 상표로 등록이 불가능하다. 초코파이라는 보통명사가 있고 그 앞에 붙은 ‘해태', ‘크라운’ 등의 별도 브랜드로 제품을 구분하는 행태가 이미 굳어지고 말았다는 해석이다.진짜 원조는 미국의 문파이?
법원이 롯데의 주장을 들어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실 한국 오리온 초코파이를 탄생시킨 건 미국의 문파이(Moon Pie)다. 문파이는 1917년 미국 테네시주에 있는 채타누가 베이커리에서 처음으로 탄생했다. 베이커리의 영업사원이 테네시의 한 광부에게 찾아가 어떤 과자를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달만큼 큰 과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문파이는 우리나라의 삼각김밥처럼 당시 미국 남부의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일종의 간편식이 됐다. 저렴한 가격에 우유와 함께 먹으면 나름의 영양식이어서 1950년대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오리온 연구소 직원들이 1973년 식품협회 주관으로 미국에 출장을 갔다가 호텔에서 문파이를 맛보고 국내에서 비슷한 파이류 개발에 들어갔다. 1년의 시도 끝에 무르지 않는 적당한 식감의 크래커를 굽는 데 성공해 초코파이가 탄생했다. 당시 동양제과(오리온)의 소송에 대해 다른 업체들은 "동양제과의 초코파이는 미국의 문파이를 참조했다고 하는데 우리도 문파이를 벤치마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롯데나 해태의 전후과정을 보면 기업 윤리적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있었다. 이들은 '초코파이' 이전에 이미 오리온에 대적할 비슷한 느낌의 롯데의 몽쉘통통과 해태의 오예스를 이미 성공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오리온 초코파이와 이름도 같고 모양과 패키지 디자인까지 거의 비슷한 제품을 출시했다는 것이다.‘정(情)’으로 통한 마케팅,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오리온 초코파이는 여전히 매출 1위를 지키고 있었지만, 크라운제과의 빅파이와 해태제과의 오예스가 등장하면서 점차 압도적인 점유율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89년 오리온이 던진 마케팅 전략은 ‘정(情)’이었다. 제품 자체가 아닌 대중의 아련한 추억과 감성을 파고들면서 90년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다. 대중에게 이런 감성 마케팅 전략이 통하자, 초코파이의 매출은 다시 급격하게 늘어난다. 90년대 단일 상품으로는 최초로 월 40억 이상의 매출을 냈다. 2006년에는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이 직접 초코파이 CF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전쟁의 끝은?
90년대 치열했던 파이전쟁은 오리온 초코파이와 후발주자인 롯데제과 몽셸, 해태제과 오예스의 3자구도가 되면서 일차적으로 막을 내린다. 이후 오예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고구마, 녹차, 모카, 딸기 등 새로운 맛 제품을 다양하게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