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석유 대중화가 된 계기
2024-06-05 어기선 기자
내연기관차보다 더 빨리 개발됐던 전기자동차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더 빨리 개발됐었다. 1828년 헝가리 사제 아니오스 예들리크가 최초로 소형 전기차 모형을 발명하면서 전기차 개발에 인류는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100㎞/h를 세계 최초로 돌파하면서 전기차의 보급이 눈앞을 두고 있었다. 게다가 내연기관차에 비하면 소음이 덜했다. 전기차는 조용한 차량이고, 시동 과정에서도 불편이 없었다.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자동차는 불을 지피고 물을 끓이는 시간이 45분이 걸렸다. 휘발유 자동차는 시동을 걸기 위해 크랭크를 돌려야 하고, 복잡한 기어 변속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기차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갑작스럽게 전기차는 사라지고 휘발유 자동차가 대중화가 됐다. 그 이유는 바로 포드 T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휘발유 자동차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없었다. 수작업으로 자동차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포드 T는 컨베이어 벨트 조립라인 시스템을 만들었고, 단일 모델, 단일 색상 생산을 했으며, 차체를 규격화했다. 아울러 부품의 최소화와 수수료의 최소화를 통해 가격을 저렴하게 만들었다. 가격이 저렴해졌다는 것은 휘발유 자동차의 대중화가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참전을 하면서 포드T는 장갑차, 군용 구급차 등 군용으로 개조돼 다녔다. 전기차는 배터리를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석탄 자동차는 검은 연기를 만들어 냈지만 휘발유 자동차는 그런 걱정이 없으면서 전쟁에서 유용한 자동차가 되면서 그로 인해 휘발유 자동차가 대중화됐다.석탄 전함에서 석유 전함으로
해상에서도 기존까지는 석탄 전함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미국이 석유만으로 기동이 가능한 전함을 개발했으며 영국 역시 석유 전함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해군은 1882년부터 석탄 전함보다 석유 전함이 전투 능력이 탁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석탄 전함은 검은 연기가 나오고 그 연기는 10km 바깥에도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즉, 함포 사격 시대에 석탄 전함은 맞지 않은 것이다. 이에 해군 전함을 석탄 전함에서 석유 전함으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됐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석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석유 산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조지 커즌 영국 외무장관은 전쟁이 종료되고 “연합국은 석유를 쏟아부어 승리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