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밀양 사건 사적 제제 그리고 고려 복수법

2024-06-07     어기선 기자
KBS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최근 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에 대한 사적 제재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해당 사건은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을 1년간 집단성폭행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피해자 가족에 대한 가해자 가족의 협박에다 솜방망이 처벌 등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문제는 피의자 44명 중 7명만 구속기소가 되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러자 한 유튜브 채널이 최근 성폭행에 가담했다는 가해자들의 이름과 얼굴, 나이, 직장 정보 등을 공개했다. 그리고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도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여성은 자신과 무관하다면서 법적 대응에 나섰고, 무분별한 신상 공개라면서 사적 제재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더욱이 처음 신상 공개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피해자 가족과 직접 대화를 나눴다면서 피해자의 동의도 얻었다고 했지만 피해자 지원단체였던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5일 자료를 내 이를 반박했다.

사적 제재, 고려 복수법

사적 제재의 폐해를 알려주는 역사적 사례는 고려시대 복수법이 있다. 말 그대로 복수를 허용하는 법이다. 고려 제5대 왕인 경종이 제정했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호족들의 딸과 혼인을 하면서 가족 관계가 됐다. 문제는 이로 인해 왕비가 너무 많아졌고, 왕자들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에 권력다툼이 상당히 일어났으며, 개경은 피바람이 불었다. 광종은 호족들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실시했으며, 호족들을 숙청해나갔다. 호족들 역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호족들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원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광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를 했는데 광종과 달리 경종은 호족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광종 때 숙청된 호족들에 대한 사면령을 대대적으로 내렸다. 하지만 광종 때 상대 호족의 모함을 받아 숙청된 호족들 후손들은 원한을 품었고, 이에 복수를 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고, 경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사소한 다툼에도 살인으로

975년 경종이 복수법을 허용하면서 호족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상대에 대해 복수를 하게 됐다. 이에 길거리에서 갑자기 때려 죽어도 복수라고 하면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에 사소한 이유로 사람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됐고, 정도가 심해졌다. 급기야 976년에는 집정(재상) 왕선이 태조의 아들이자 경종의 삼촌들인 천안부원낭군(효성태자)과 진주낭군(원녕태자)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즉, 신하가 왕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자 경종은 복수법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에 왕선을 파직한 후 지방으로 유배를 보냈으며 복수법을 악용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복수법을 즉각 폐지했다. 복수법은 이렇게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후대에서 복수법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경종에 대한 비판도 일어났다.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시행되지 말아야 할 제도가 시행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