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6월 10일 6.10 만세운동
2025-06-10 어기선 기자
순종 황제 승하하자
1926년 4월 26일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 황제가 승하하면서 조선 왕실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일본제국은 3.1 만세운동과 같은 대규모 만세운동이 벌어질까 두려워 영친왕을 이왕으로 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교도와 조선공산당은 3.1 만세운동과 같은 만세 시위를 한 번 더 전개할 준비를 했다. 이에 권오설을 중심으로 ‘6.10 투쟁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즉, 순종 황제 장례식에 서울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방에서는 장례식에 참석한 대중들을 결집해서 항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했다. 권오설을 중심으로 6.1 투쟁특별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이 한반도에 전파됐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을 했고, 병참기지로 활약을 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제국의 경제성장은 정체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본제국 내부에서 파업 등 노동쟁의가 일어났고, 그 사상적 기반이 사회주의 사상이었다. 그 사회주의 사상이 한반도에 전파되면서 항일투쟁의 사상이 되기도 했다.노조 중심
권오설이 중심이 된 노총과 인쇄 조합원들이 만세운동을 계획했고, 여기에 수많은 단체가 참가했으며, 학생들이 참가했다. 권오설 중심으로 노총과 인쇄 조합원들이 5만매의 격문을 인쇄하고 6월 10일 배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 돈 위조 사건으로 인해 일본 경찰이 인쇄소들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계획이 발각됐고, 권오설 등 주요 인물들이 체포됐다. 하지만 학생들이 중심이 돼서 만세운동을 계획했고, 6월 10일 23세 이선호의 ‘대한독립만세’ 선창에 따라 중앙고보생 100여명이 용감히 만세를 제창하고 격문 1천 장을 살포하며 태극기를 휘날렸다. 그러자 관수교 부근에 있던 보성전문 학생들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이 만세를 불렀다. 해외에서는 조선공산당 임시 상해부, 임시정부의 일부 세력, 임시정부의 외곽 조직인 의용대,일본 유학생들이 참가했고, 국내에서는 조선공산당, 고려공산청년회, 천도교, 조선노동총동맹, 국내 학생운동조직 등이 참가했다. 일본제국, 시위대 해산 일본제국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200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을 체포했다. 3.1 만세운동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제국은 강력하게 제압했다. 이에 3.1만세운동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국내외 학생운동에 큰 의미를 만든 만세운동이다. 조선학생회, 조선학생대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의 독자적 학생운동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이 6.10만세운동의 중심세력이 됐고, 그 이후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