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출신 회장’의 명암, 애경‧삼양식품‧현대그룹…아워홈의 미래는?

불닭볶음면 신화 쓴 삼양식품 김정수, 경영권 분쟁 이어온 현대그룹 현정은…아워홈 구미현은?

2024-06-20     박영주 기자
(왼쪽부터)애경산업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남매의 난으로 몸살을 앓았던 ‘아워홈’이 새로운 대표이사 회장을 들였다. 바로 장녀 구미현 씨다. 선대 회장인 故구자학 명예회장으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은 막내딸 구지은 전 부회장과 달리, 장녀인 구미현 씨는 경영경험이 전무한 ‘가정주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부회장으로 신규 선임된 구미현 씨의 남편 이영열 사내이사도 전 한양대 의대 교수로서 경영 경험은 없다. 사실 재계에서 경영 경험이 전혀 없었던 ‘가정주부’가 갑자기 경영 전선에 뛰어들게 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자타공인 ‘국내 1호 여성 CEO’인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도 있지만 1998년 삼양식품에 입사한 이후 ‘불닭볶음면’ 신화를 써내며 위기의 삼양식품을 부활시킨 삼양라운드스퀘어(삼양식품그룹)의 김정수 대표이사 부회장, 그리고 남편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타계 이후 사령탑을 맡으며 지금까지도 경영권 분쟁에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등이 꼽힌다.  물론 구미현 신임 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공식화했지만 일단 사령탑을 맡게 된 만큼, 과거 주부에서 ‘경제인’이 됐던 며느리들의 스토리와 이들에 대한 재계 안팎의 평가들을 톺아봤다. 
애경그룹

#애경그룹 장영신
채몽인 창업주 타계 이후, 가정주부에서 사업가로

연도순으로 했을 때 가정주부에서 경제인으로 깜짝 등장한 대표적인 인물은 자타공인 국내 1호 여성 CEO,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이다. 
 
경기여고 출신의 장 회장은 가톨릭 재단인 필라델피아 체스넛힐대학(Chesnut Hill College)에서 화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1959년 당시 애경유지공업 채몽인 창업주와 결혼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장 회장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하지만 1970년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사업까지 이어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장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1972년.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 CEO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장 회장은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경영을 이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특유의 강단 있는 성격으로 장 회장은 매번 어려운 상황들을 돌파해갔고, 현재의 애경은 생활용품‧화장품 외에도 항공‧부동산‧백화점 등 4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50위권의 그룹사가 됐다. 
/사진=삼양라운드스퀘어

#삼양식품 김정수
우지파동 후 어려웠던 삼양식품…‘불닭볶음면’이 부활 시켜 

두번째로 눈여겨볼 인물은 전세계에 ‘불닭볶음면’ 돌풍을 일으키며 삼양식품의 지금의 위상으로 키운 김정수 삼양식품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삼양라면은 1963년 국내에 처음으로 ‘라면’을 선보인 이후 독보적인 위치를 이어왔지만 1989년 우지파동을 시작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97년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긴 했지만 회사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IMF 금융위기로 1998년 파산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위기 상황에 등판한 인물이 바로 김정수 부회장이었다. 1994년 전중윤 창업주의 아들인 전인장 회장과 결혼하며 삼양식품家의 며느리가 됐던 김 부회장은 1998년 삼양식품에 입사, 시아버지로부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았다. 삼양식품을 다시 일으킬 돌파구를 찾던 김 부회장은 ‘신제품’ 개발 만이 살길이라는 판단 하에 각종 시도를 이어갔고, 우연히 고등학생인 딸과 명동을 찾았다가 매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매운 라면’ 개발에 뛰어들었다. 김 부회장은 “매운맛 소스를 개발하는데 2년이 걸렸다”며 2톤 정도되는 양의 소스를 썼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2012년 본격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익숙치 않은 매운맛 때문에 처음에는 시장 내에서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매운맛에 도전하는 유튜버들이 불닭볶음면 먹방 등을 찍고 K-팝 열풍에 힘입어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매운맛의 한국음식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초까지만 해도 23만원 대였던 삼양식품 주가는 지난 6월19일 71만8000원까지 오르며 고공행진했다. 실적 역시도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액 1조원을 넘긴 1조1929억원을 달성했으며 영업이익도 1468억원을 기록하는 등 ‘어닝서프라이즈’ 기록을 써내려갔다. 올해 1분기 역시도 매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57% 상승한 3857억, 영업이익은 235% 증가한 801억원을 기록하며 역대급 분기 실적을 기록한 상황이다. 
현대그룹

#현대그룹 현정은
정몽헌 사망 후 회장 취임, 계속된 ‘경영권 분쟁’에 몸살

경기여중‧여고‧이화여대 출신의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1976년 故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과 결혼해 가정주부로 있다가 2003년 8월 故정몽헌 전 회장이 대북송금 및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하면서 10월부터 갑작스럽게 경영 전선에 등장했다.  현정은 회장이 사령탑을 잡았을 당시의 현대그룹은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유명한 경영권 분쟁으로 한창 풍파를 맞은 뒤였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 그룹을 이끌고 현대그룹에서 독립한데 이어 현대전자‧현대중공업이 줄줄이 그룹에서 분리되고 현대건설과 현대상사(현 HMM)가 경영난으로 채권단에 넘어가는 바람에 그룹 전체 규모는 상당히 축소돼있었고 자녀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정은 회장이 경영 전선에 뛰어들자, 경영권 분쟁이 끊이질 않고 벌어졌다.  故정몽헌 전 회장의 타계 직후에는 ‘현대엘리베이터’를 놓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이자 부군의 시숙에 해당하는 故정상영 KCC 명예회장(범현대가)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는데 시삼촌과 조카며느리의 진흙탕 싸움은 2004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현정은 측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채권단의 손에 떨어진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을 어떻게든 현대그룹의 품으로 다시 돌리고, 오너경영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현정은 회장의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다툼은 이어졌다.  2011년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하면서는 故정몽주 명예회장의 아들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경쟁을 벌였으며, 현대상선 경영권과 관련해서는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과 각을 세웠다.  스위스 엘리베이터 업체 쉰들러와의 갈등도 현정은 회장이 넘어야할 산이다. 현대엘리베이트 관련 경영권 다툼 당시 쉰들러는 2006년 KCC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25.5%를 확보하고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등 노골적인 흔들기에 나섰다.  2014년에는 현정은 회장이 현대상선(현 HMM)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금융사들과 파생금융 상품 계약을 맺은 것과 관련 현대상선의 주가하락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 10년 가까이 이어진 공방 끝에 현정은 회장이 2000억원 가량을 회사에 갚아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도 했다. 쉰들러의 흔들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어왔던 금강산 관광 등 대북관광사업 역시도 관광객 피격 사망 이후 남북간의 관계개선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으면서, 현대아산이 막대한 손실을 본 이후 건설업에서 돌파구를 찾고는 있지만 여전히 회복이 쉽지 않다. 

다시 돌아와서 아워홈의 구미현 신임 회장이다. 가정주부 출신의 며느리들이 경영에 뛰어든 이후의 모습을 보면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끊이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버티기를 이어가야할 수도 있다.
 
경영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태로 대표이사 회장직에 오른 구미현 신임 회장은 19일 취임 인사말을 통해 “2016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회사 대내외 이미지 추락과 성장동력 저하를 묵과할 수 없었다”며 “경영권 분쟁을 근원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전문경영인에 의한 합리적인 회사경영”이라 전했다. 

직원들의 고용승계 및 지위보장을 명문화 하면서 자신은 경영을 잘 모르니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겠다는 취지지만, 사실상 아워홈의 매각을 공식화하고 ‘괜찮은 매수자’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구 회장 측의 뜻대로 아워홈을 잘 키워줄 매수자가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구원투수가 등장하지 않을 경우 아워홈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