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 경제리뷰] 공각기동대 그리고 구룡채성
2024-07-08 어기선 기자
구룡채성은
구룡채성(九龍寨城)은 홍콩 구룡반도에 1993년까지 존재했던 슬럼가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고층 슬럼 풍경을 자란하는 장소이다. 이런 이유로 홍콩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와 같은 사이버펑크 장리와도 상당히 잘 어울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워낙 마구잡이라고 지어진 건물인데다 바로 옆에 공항이 있기 때문에 비행기 이착륙 소음이 상당한 곳이기도 했다. 본래 구룡채성은 청나라 요새로 팔기군이 영국군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이다. 제2차 아편전쟁 이후 구룡반도가 영국의 소유가 됐지만 구룡채성은 중국의 소유가 됐다. 그러면서 팔기군이 사라졌고, 빈 성채에는 한족들이 대거 점령하기 시작했다. 1941년 홍콩을 점령한 일본군은 구룡채성의 성벽을 허물어버리고 카이탁 비행장 확장을 시도했다. 1945년 일본군이 쫓겨나면서 다시 영국땅이 됐지만 국공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남부 출신 부랑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중화민국이 들어서면서 해당 지역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영국도 손을 놓게 됐다. 문제는 중국 국민당 정부도 관리를 거부하면서 무법지대가 됐다. 즉, 영국도 손을 놓고 중국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쫓겨나면서 실효적 지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난민들 모이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중국이 공산화된 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이 본토에서 벌어지면서 피난민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다만 영국 홍콩 경찰도 치안을 건드리지 못하고, 중국 공산당 정부도 치안을 건드리지 못하고, 대만 국민당 정부도 치안을 건드리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삼합회 등 조직폭력배가 해당 장소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법의 허점이 생기게 되면서 성매매업소, 도박, 아편굴, 헤로인, 무허가 병원, 무허가 치과 등 각종 불법 업소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난민은 더욱 유입되면서 무허가 고층 건물이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항로의 높이까지 올라가게 되면서 비행기와 부딪히는 염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84년 중영공동선언이 체결되면서 홍콩의 중화인민공화국 반환이 결정되면서 구룡채성 역시 철거 수순에 돌입했다. 1986년 영국령 홍콩정부가 중국 정부의 묵인 하에 경찰을 동원해서 범죄자를 소탕했다. 그리고 홍콩소방처가 구룡성 소방서를 개서하면서 소방차와 구급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홍콩정부는 1991년 11월부터 1992년 7월에 걸쳐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해당 장소에 공원 조성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현재는 구룡채성공원이 조성됐다. 다만 구룡성채는 지금도 여러 콘텐츠에서 암울한 도시의 이미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