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태평양 갈레온 무역

2024-07-25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태평양 갈레온 무역의 핵심은 스페인과 중국을 잇는 중간에 필리핀이 있다는 점이다. 즉, 필리핀의 중계무역이 ‘태평양 갈레온 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1565년~1787년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 스페인은 신대륙 광산에서 나오는 막대한 부를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시아와의 원활한 무역이 필요했다. 그리고 식민지인 필리핀이 그 역할을 했다. 스페인이 중남미 등을 식민지배했던 것과 필리핀은 다른 통치를 했다. 중남미는 은광 등이 풍부했기 때문에 식민지배를 하면서 토착민들을 착취했다. 하지만 필리핀은 ‘자원’도 없었기 때문에 토착민을 착취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필리핀에는 중국시장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등 뒤에 있었다.

지리적 이점

필리핀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접경지이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 그리고 유럽을 잇는 교차로에 위치해있다. 또한 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해군만으로 충분히 방어가 가능했다. 아울러 중국이라는 중앙집권국가로부터 영향력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스페인은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는 것이 용이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상인들과도 접촉이 용이했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은 필리핀을 동서양 무역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필리핀 마닐라항과 멕시코 아카풀코항 그리고 스페인 본국의 세비항까지 이어지는 태평양 갈레온 무역로를 300년 동안 운영한 것이다.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거대 시장인 중국과의 무역로가 열렸다는 점에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중남미에서 유입된 은화를 대부분 필리핀으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그 은화로 중국과 아시아 무역에 사용했다. 중국은 은본위제 국가였기 때문에 은화를 통해 무역상품을 지불했고, 무역상품은 필리핀 마닐라항을 통해 스페인으로 유입됐다. 주로 비단이나 도자기 등이었다. 스페인으로서는 중남미 금광과 은광에서 나오는 금화와 은광이 본국에 계속 쌓인다면 인플레이션을 겪는데 중국과의 무역을 하면서 이 문제도 해결을 했다.

기회의 땅 필리핀

필리핀은 그러면서 기회의 땅이 됐다. 스페인이 필리핀 제도 전체를 식민통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식민지배를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지배를 할 수도 없었고, 실익도 없었다. 결국 필리핀 일정 지역의 지배 정도로만 끝났다. 이에 필리핀 마닐라항에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유입됐다. 아메리카에서는 농산물이 필리핀으로 유입됐고, 그러면서 바나나도 재배를 하게 됐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유럽산 무기가 유입돼서 필리핀 해안 국경에 배치됐다. 중국에서는 비단과 도자기 등이 필리핀을 통해 스페인에 전해졌다. 여기에 펠리페 2세가 말년에 원주민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필리핀 원주민들은 자유민이 됐다. 하지만 스페인은 네덜란드가 독립을 해나가고, 여러 전쟁을 겪으면서 결국 필리핀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결국 태평양 갈레온 무역도 시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