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바야돌리드 논쟁

2024-07-31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바야돌리드 논쟁은 1550년 스페인 서북부 바야돌리드에서 일어난 논쟁이다. 논쟁의 주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간으로 볼 것이냐 짐승으로 볼 것이냐이다. 만약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간으로 본다면 천주교의 포교 대상이 되면서 노예로 삼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짐승으로 본다면 천주교 포교 대상이 아닌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스페인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과도 연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스페인 귀족들이 아메리카에서 원주민을 노예로 삼았기 때문이다.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이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시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원주민을 노예로 삼았다. 하지만 스페인 내부에서도 식민통치가 잔혹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가 잉카제국은 1500만명, 아즈텍은 1000만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백년도 안돼서 전체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가 100만명을 조금 넘길 정도로 대폭 축소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식민통치로 인해 노예생활을 비참하게 하면서 스페인 내부에서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동정론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는 아메리카 통치 수단인 엔코미엔다를 폐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엔코미엔다는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통치 권한을 위임 받아 관리자가 아메리카를 통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엔코미엔다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던 스페인 대귀족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카를로스 1세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판단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방야돌리드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짐승인가

핵심은 아메리카 원주민은 ‘사람’인가 ‘짐승’인가 여부였다. 짐승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아메리카 원주민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강압적 방법으로 지배하고 통치해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반면 인간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원주민은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설득과 교육을 통해 원주민을 교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원주민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식인 풍습이 있으며, 인신공양을 하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짐승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 역시 자영법과 국제법에 따라 하느님 앞에서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게르만족도 우상숭배와 식인 풍습, 인신공양이 있었지만 기독교가 교화했다면서 교화를 하게 되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결국 인간론의 승리로

이같은 논쟁이 길어졌고, 결국 교황 특사는 원주민은 이성과 문화가 있으며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노예로 삼거나 가혹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원주민을 노예로 만드는 행위가 불법이 된다. 교황이 이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종교개혁과 연관이 돼있다.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개신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천주교 신자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게 됐다. 이에 천주교 신자를 늘려야 하는 숙제를 교황이 안게 됐다. 즉,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간으로 결론을 내리게 함으로써 천주교 신자의 숫자를 늘리게 한 것이다. 실제로 아메리카 특히 남미의 경우 천주교 신자가 대부분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면 노예 상인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조치였다. 이에 노예상인은 새로운 대상이 필요했다. 이미 아프리카에서는 아랍상인들을 중심으로 노예 매매가 있어왔다는 것에 주목을 하고 결국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사들여서 아메리카에 이주하게 했다. 그러면서 흑인 노예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