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칼럼]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025-08-02     김진혁
[파이낸셜리뷰]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귀향 과정서 겪는 모험을 다룬 대서사시다. 그리스군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조국으로 돌아갔으나, 이타케 섬의 국왕인 오디세우스는 귀국할 수 없었다.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를 장님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칼립소의 섬에 갇혀 있을 때, 여신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남편으로 만들려고 온갖 좋은 것을 대접하지만 실패한다. 오디세우스를 보내기 전에 여신은 그의 부인이 여신인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지 묻는다. 오디세우스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제 아내의 미모는 당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상징한다. 오디세우스의 아내에게 구혼하는 남자들에게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위해 짜는 수의가 완성되면 재혼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는 진심이 아니었고, 그녀는 매일같이 남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의를 짜고, 밤이 되면 몰래 다 풀어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희망이 없어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의무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에는 보잘것없이 보일지라도 각각은 미지의 무엇이 있다는 의미이다. 오디세우스는 말한다. “인간의 삶은 불멸과 영생을 사는 신(神)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인간은 모험과 시련을 넘나들며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대로 사는 당신이 바로 영웅이다.” 우리는 모두 존엄하고 명품 중의 명품으로 태어났다. 사회경제를 주장하다가 대학교수직을 박탈당했던 스콧 니어링(1883-1983)은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지향하기 위해 척박한 산속으로 들어간다. 요즘 TV의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아내와 함께 땅을 일구고 자급자족과 저술과 강연을 하고 살았다. 그의 삶과 생활 방식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환경의 성지처럼 버몬트를 찾았다. 그는 100세 생일 일주일 전부터 곡기를 끊고 아내의 무릎을 베고 죽었다. 자연을 삶을 너무 사랑한 자연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웃는 날들을 모으면 행복이 되고 좋은 날들을 모으면 추억이 되고 노력한 날들을 모으면 꿈이 된다. 행복을 현실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진 게 없다고 불평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당신이 가진 꿈 자체만으로도 멋지고 승자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 강한 사람은 약점이 없는 사람이 아닌 약점도 부족한 점도 있지만, 묵묵히,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이다. 인생에서 무엇이 부족한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부족해도 계속할 수 있느냐이다. 거슬러 올라가는 송어처럼 용기로 씩씩하게 당당하게 나가자. 하루하루의 가치가 쌓여 생의 끝자락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