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맥심, 카누... 커피왕국을 일군 동서식품

2024-08-09     김희연 기자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스타벅스, 컴포즈커피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카페와 커피들이 생기고 성장했지만, 믹스커피는 여전히 한낮의 나른한 정신을 깨워주는 한국인의 소울드링크다. 오늘날 맥심과 카누 등 인스턴트 커피가 모든 가정과 회사 사무실에 비치되기까지 동서식품이 달려온 역사를 살펴본다. 
동서식품

삼성을 성장시킨 주역, 김재명 명예회장
1972년 동서식품을 인수한 김재명 명예회장은 우리나라 커피 시장을 장악하기 이전에 초졸 학력으로 약 30년 넘게 삼성 창업주 이병철 명예회장의 신임을 얻은 초일류 월급쟁이였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수행하며 삼성의 성공 신화를 함께 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김재명 직원에게 믿음이 갔던 이병철 회장은 대구에 있는 새로운 사업장에 보냈다. 그동안 서울의 사업장에 몰두했던 이병철 회장은 대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침울한 마음으로 대구에 피난을 갔다.  그때 대구 양조장의 사장 지배인 김재명이 당시 거액의 돈이었던 3억원을 잘 간직하고 이병철 회장에서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고 한다. 20대 후반의 김재명 회장이 전쟁통에도 도망가지 않고 회사를 지켜준 덕분에 삼성은 3억의 자금으로 다시 제조업에 투자하고 제일제당을 설립했다.  이때 공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설탕 생산을 성공시킨 것도 김재명 회장이었다. 김재명 회장은 삼성이 여러 제조업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처음 생산하는 물건을 성공시키고, 원가를 절감하는 등 놀라운 활약을 이어갔다. 이병철 회장의 장남은 훗날 제일제당의 공장건립을 기획하고, 실제 공사를 진행했으며 운영을 주도한 최고의 공신은 김재명 씨이며 아버지가 평생을 고마워한 사람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삼성의 일등 공신, 커피왕국을 세우다
김재명 회장은 1968년 삼성의 사장이 되고, 여러 삼성 계열사 사장도 거치면서 이 회장 곁을 35년 가까이 지켰다. 이병철 회장이 다른 임직원들과 달리 김재명 사장에게는 끝까지 호칭을 뺀 이름을 부를 만큼 신의가 두터웠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은 김재명 사장이 50대 초반 삼성을 떠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도 무엇이든 돕겠다는 약속을 했다.

회사를 나온 김재명 회장은 삼성 퇴직금 등을 투자해 1972년 커피 회사인 동서식품을 인수한다. 1968년 설립된 동서식품은 맥스웰하우스 브랜드를 가진 미국 회사와 손을 잡고,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던 회사였다. 김재명 회장이 인수하기 전에는 사장이 횡령 혐의를 받고 운영난까지 겪는 등 회사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사진=동서식품
김재명 회장은 부평에 공장을 짓고 원두를 직접 수입해 1970년부터 인스턴트커피 맥스웰하우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한 기존의 커피뿐만 아니라 공장가동률을 높이고자 가로형 커피 크림 대용품인 프리마를 출시하고 주스 생산 기술을 들여와 홍차, 캔 커피 등 신제품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동서식품
특히 1976년 커피와 프리마, 설탕을 모두 넣은 전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 생산은 동서식품 상승세에 불을 지폈다. 당시 커피는 여전히 도시의 다방 같은 곳에서 많이 소비되곤 했지만, 점점 일반 가정용이나 회사용으로도 팔리기 시작했다. 성공 비결 중 38년 동안 장수 모델을 기용하는 등 미국 본사의 개입이 들어간 마케팅 효과도 똑똑히 봤지만, 원가를 관리하고 수율을 높인 김재명 회장의 경영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생산과 마케팅이 모두 힘을 발휘하는 가운데 동서식품은 70년대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나갔다. 
사진=동서식품
1980년대에는 지금도 시장을 압도하는 브랜드 상품인 맥심이 출시된다. 냉동 건조 기법으로 기존의 맛과 향을 살린 맥심은 미국 합작사의 브랜드로, 미국에서 기술을 받아 한국에서도 만들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입 인스턴트커피를 많이 사 먹는 시기였기 때문에, 광고에서 미국 커피의 맛과 향과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광고 모델도 연예인이 아닌 유명 작가들을 써서 소비자에게 더욱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다가서는 등 프리미엄 전략이 성공적으로 먹히자, 출시 2년도 안 돼 천만 병 생산을 돌파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던 커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사진=동서식품
동서는 커피나 차뿐만 아니라 꿀, 본사의 기술을 들여와 시리얼도 출시했다. 이후 티백 상품으로 결명자차, 보리차, 옥수수차 등이 출시됐는데, 주전자에 물과 함께 큰 티백을 같이 넣어 끓여 마시면서 티백은 가정에서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국민 제품으로 등극했다.

수많은 위기설에도 견고한 동서
1987년 세계 1위의 식품기업 네슬레가 한국에도 들어오는 등 점차 경쟁사들이 제품을 하나둘 출시했지만, 부드러운 맛을 강조한 맥심 모카골드의 등장에 90년대 중반에도 인기는 계속됐다. 

심지어 IMF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카페에 발길이 끊이고 소비자들이 오히려 저렴한 커피믹스를 찾게 되면서 동서식품은 국가 위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업계에선 1997년 IMF 사태가 커피믹스 시장을 성장시켰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90년대 후반 스타벅스가 들어오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분위기가 확산하자 동서식품에 또 한 번 위기감이 감돌았지만, 믹스커피를 향한 충성도는 꺾이지 않아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 나갔다.
액상커피음료
이후 밖에서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실내에서도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진짜 위기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속에서 동서식품은 스타벅스 브랜드를 라이선스로 들여와 캔커피, 병커피 등 용기에 들어있는 커피를 출시하며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카누
나아가 기존의 커피믹스 대신 아메리카노 대용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카누’를 출시해 또 한 번의 성공을 맛보았다. 카누는 커피전문점에서 원두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인 에스프레소 추출 방식으로 짧은 시간에 저온으로 뽑은 커피를 파우더로 만든 제품이다. 커피를 내리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 없이도 커피전문점에서 즐기는 커피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카누
동서식품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현재 장비는 물론 카누 캡슐 등 캡슐 커피에도 공을 들이고 있으며, 프리미엄 커피 시장을 겨냥한 제품과 디카페인 커피도 출시하는 등 커피 시장에서 다방면의 전략을 취하는 중이다. 시장에선 앞으로도 동서식품이 앞으로도 우리나라 커피 시장을 이끌어갈 선도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