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우씨 왕후
2024-08-29 어기선 기자
우씨왕후는
우씨왕후는 제9대 고국천왕과 제10대 산상왕의 왕후를 말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형사취수제를 통해 왕후의 자리를 2번이나 하면서 권력을 유지해간 여성이다. 우씨왕후는 절노부 출신 우소의 딸이었는데 고국천왕 때 왕후가 됐다. 그러다가 197년 5월 고국천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우씨왕후는 왕의 사망 소식을 숨기고 왕의 형제인 발기를 찾아 후사를 논하려고 했다. 하지만 발기는 야밤에 찾아온 형수를 철저히 외면했고, 이에 우씨왕후는 고국천왕의 또 다른 동생인 고연우를 찾아갔다. 이때 고연우는 발기와 달리 우씨왕후를 맞이했는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고연우가 우씨왕후를 대접하기 위해 고기를 썰다가 칼에 베이자 우씨왕후가 치마끈을 풀어 상처를 감싸줬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왕궁으로 돌아왔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고연우는 산산왕이 됐고, 발기는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산산왕의 막내동생이었던 고계수가 진압했다.후사가 없던 산산왕
산상왕은 결국 형수였던 우씨왕후를 왕후로 맞이했지만 산상왕은 후사가 없었다. 이에 왕은 산천에 기도를 했는데 꿈에 작은 왕후를 통해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에언을 듣게 됐다. 우씨왕후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산상왕은 다른 왕후에 눈길조차 주지 못했고, 이에 을파소에게 상담을 했는데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조언을 들었다. 몇 년 후 나라의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쳐 관노부 주통촌 출신 ‘후녀’라는 여성의 도움으로 잡게 됐고, 산상왕은 후녀와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으면 버리지 않기로 약조했다. 이 사실을 우씨왕후가 알게 되고, 명사를 보내 후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후녀는 자신이 임산부라는 사실을 병사들에게 알렸고, 자신을 죽이면 왕의 자식도 죽게 되는 것이라고 병사들에게 말했다. 결국 후녀를 작은 왕후로 맞이했고, 아들을 낳았다.고국천왕 왕릉에 소나무
우씨왕후는 234년(동천왕 8년)에 사망했는데 죽기 전 유언이 죽어서도 고국천왕 얼굴을 볼 수 없다면서 산상왕 능에 장사를 지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당이 “국양왕(고국천왕)께서 아내가 동생과 합장되는 걸 보고 대노하셨고, 세상 사람들 보기 부끄러우니 자기 무덤을 가려달라고 하셨습니다”라고 전했고, 이에 고국천왕 능 주의에 소나무가 심어졌다. 조선시대에서 우씨왕후는 ‘인륜을 어긴 악녀’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성리학적 질서에 기반을 한 평가이다. 오늘날 우씨왕후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 역사상 두 명의 왕을 남편으로 둔 유일한 왕비이고, 산상왕을 스스로 세웠다는 점에서 재평가 받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