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면신례

2025-10-07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면신례는 조선시대에 신입 관료가 치렀던 가혹한 신고식이다. ‘신입을 면한다’는 의미인데 일종의 신고식이다. 또한 악습이기도 하다. 오늘날 군대의 ‘똥군기’ 문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면 신입생 환영회에서 과도한 술 강요 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면신례가 일어난 이유

면신례는 고려말 우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권문세족 자제들은 음서 등을 통해 관직에 진출했고, 신진사대부는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권문세족 자제와 신진사대부 간의 알력다툼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고, 그것이 면신례를 만들었다. 권문세족 자제가 승진을 한 상태에서 신진사대부가 들어오면 신진사대부의 기를 꺾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면신례이다. 권문세족 자제는 ‘글’을 몰라도 음서라는 제도를 통해 들어왔지만 신진사대부는 오로지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들어올 수 있었다. 따라서 권문세족 자제 입장에서는 신진사대부의 기를 누를 필요가 있었고, 그것이 면신례가 됐다.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오면서 ‘관료주의’ 사회가 됐다. 즉, 과거와 같이 음서제가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만약 영의정 아들이 하급관리로 관직에 들어올 경우 상급자가 영의정 아들을 다루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면신례를 통해 신입 관료의 기를 꺾어 버리는 것이고, 그것을 묵인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지만 면신례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악습이 됐다. 그 이유는 거창하게 술상을 차려서 대접해야 하고, 상관들의 각종 벌칙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 잘만난 금수저일 경우에는 상관 없지만 흙수저일 경우에는 술상 비용을 대기 위해 가산이 거덜나기도 했다. 국왕과 고위 관료들은 면신례를 금한다고 했지만 면신례를 없앨 수 없었다. 그것은 관행이라고 버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면신례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됐다. 이런 면신례가 확장이 되면서 전임관료가 신임관료에게 받아먹는 향응접대로 바뀌게 됐다. 예컨대 A라는 사람이 B라는 고을의 수령으로 가게 된다면 신임관료인 A가 B고을 전임수령에게 향응을 대접해야 했다. 향응을 대접하게 되면 가산이 거덜나게 되고, 거덜난 가산을 채우기 위해서는 결국 탐관오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