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씨받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씨받이는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할 때, 다른 여자를 데려와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아이를 대신 낳게 하는 일을 말한다.
흔히 조선시대 악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관습이다. 즉, 현대에 만들어진 가공의 관습이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굳이 ‘씨받이’를 이용해서 대를 이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는 정실부이이 아이를 낳지 못하더라도 ‘대를 이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장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잘못된 내용
조선시대 정실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여러 가지로 대를 이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굳이 ‘씨받이’를 이용해 대를 이을 필요가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정실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서자가 대를 이었다. 심지어 양자를 들여 대를 잇게 했는데 이를 ‘입후’라고 불렀다.
즉, 조선시대는 첩실 제도를 뒀기 때문에 정실부인을 통해 아이를 낳지 못하면 후실 즉 첩을 통해 아이를 낳게 했다. 이런 이유로 굳이 ‘씨받이’를 통해 아이를 낳게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또한 후실 즉 첩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자신의 친인척 중 한명으로부터 아이를 입양할 수 있었다.
만약 남자 집안이 ‘신분도 모르는 여성’에게 낳은 아이를 들인다면 집안의 반대가 심하다. 따라서 씨받이를 통해 아이를 얻는 ‘모험(?)’을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
씨받이가 조선시대 악습이 된 이유
씨받이가 조선시대 악습이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이다. 일제강점기 들어서면서 첩을 두는 제도가 비난의 대상이 됐고, 양자를 들이는 것 자체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가 되면서 간혹 씨받이를 두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도기적인 것이지 조선시대 악습은 아니었다. 즉, 씨받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나타난 악습 중에 하나인데 그것이 마치 우리의 전통적인 악습인 것처럼 현대에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