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술게임

2024-10-28     어기선 기자
사진=더블랙레이블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술게임은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면서 참가자들에게 술을 마시게 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게임이다. 술자리 게임이라고도 한다. 친구, 선후배 사이에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지만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는 곤욕스런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술자리 흥이 차오르고, 술에 취하는 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없어져야 할 악습 중 하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술자리 게임 대명사 ‘주령구’

술자리 게임하면 떠오르는 것이 통일신라시대 ‘주령구’이다. 신라 안압지에서 14면 주사우ㅢ가 발견됐는데 주령구(酒令具)라고 불렀다. 즉 술자리용 주사위이다. 주령구는 신라 귀족들이 술자리 등 연회에서 던져 나오는 내용을 벌칙으로 삼았다. 예컨대 금성작무(禁聲作舞)는 소리 없이 춤추기, 중인타비(衆人打鼻)는 여러 사람 코 두드리기, 음진대소(飮盡哈哈大笑)는 술 한 잔 다 마시고 크게 웃기, 삼잔일거(三盞一游)는 한번에 술 석 잔 마시기 등이다. 즉, 신라시대부터 술자리 게임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도 술자리 게임이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7대 임금 세조이다. 어린 조카인 단종을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했지만 술자리에서만큼은 호방한 인물이다. 세조 말년 신숙주가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났고, 새 영의정에 구치관(具致寬)이 올랐다. 술자리에 세조가 두 사람을 불러놓고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신정승 술을 드시오”라고 하자 신숙주가 “예”라고 대답하자 세조는 껄껄 웃으면서 “신(新) 정승에게 술을 들라고 했다”면서 신숙주에게 술을 먹였다. 얼마 후 “구 정승 드시오”라고 하니 구치관이 “예”를 하자 구(舊) 정승을 불렀다면서 구치관에게 벌줄을 먹였다. 이처럼 임금도 술자리 게임을 통해 유흥을 즐겼다.

해방 이후 대학 성장하면서

술자리 게임은 해방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학의 성장과 MT의 보급과 연결된다. 1970년대 MT가 보급되고, 1980년대 수도권 인구분산 정책에 따라 서울 소재 대학교가 타지역에 캠퍼스를 설립하면서 대학교가 전국으로 난립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퍼져 있던 술자리 게임 문화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게 됐다. 술자리 게임은 OT, 개강총회, MT 등에서 이뤄졌고, 수많은 게임과 규칙이 나면서 지방마다 다르고, 술자리마다 다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술 마시는’ 강요 문화와 연결되면서 술자리 게임 문화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술자리에서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간단하면서 신나는 것 위주로 발전을 하게 되면서 오늘날 술자리 게임 문화가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로 대학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자 술 게임 문화가 빠르게 쇠퇴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코로나19 엔데믹이 되면서 다시 술자리 게임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