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4일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2025-11-04     어기선 기자
당시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79년 11월 4일은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1981년 1월까지 미국인 50여명이 이란에 인질로 억류됐던 사건이다. 미국과 이란이 적대적 관계가 된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다. 그 여파가 현재에도 이어져 오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란 혁명 성공 이후

이란 국민은 친미 정권인 팔레비 왕조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그 이유는 팔레비 왕조의 독재와 부정부패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반미 정서도 팽배해졌다. 1978년 엄청난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발발했고, 1979년 1월 팔레비 2세는 해외 망명했다. 그러면서 이란 혁명이 성공하자 반정부 시위 주동 세력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졌다. 여기에 15년간 해외에 망명했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2월 전격 귀국하면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 그해 3월 국민투표에서 99.3%의 찬성으로 ‘이슬람의, 이슬람을 위한, 이슬람에 의한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러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하면서 모든 서구식 제도, 관습 등을 폐기하고 이슬람 원점으로 회귀하게 됐다. 이에 반미 감정은 더욱 고조됐다.

팔레비 국왕 입국 허용

그런데 지미 카터 행정부가 신병 치료를 이유로 팔레비 전 국왕의 입국을 허가했다. 그러면서 이란 급진 강경파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호메이니는 팔레비 국왕의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미국은 거부했다. 그러자 호메이니 정부는 궐석재판을 열어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11월 4일 학생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으로 난입, 70여명의 외과관을 인질로 억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란 혁명 정부는 이들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미국은 이란산 석유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고, 이란의 재미 예금 전액 인출 및 재미 이란 공적 자산 동결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미 해군이 아라비아 만에서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결국 미국은 1980년 4월 7일 이란과 단교를 했고, 미국 내 이란 외교관들을 추방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그런데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호메이니가 유화적인 태도로 나오게 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국도 역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게 됐고, 이에 444일 만인 1981년 1월 20일 억류된 인질 전원을 석방시키고 미국으로 귀환시키면서 막을 내렸다. 이날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식을 거행한 날이다.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미국의 인도양, 아라비아만의 군사력 증강을 초래했고, 미국의 확장을 두려워했던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했다. 또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장기화에 접어들었다. 미국 정가는 급격히 보수화됐고, 이에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욱 보수화됐다. 그러면서 레이건이 내놓은 신자유주의가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전파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