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애경그룹, 비누 회사에서 하늘을 날기까지

생활용품 기업에서, 화장품, 유통, 항공 분야에도 뛰어든 장영신 회장

2025-11-04     김희연 기자
/사진=애경그룹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케라시스, 트리오, 2080 등 애경그룹은 기업 이름보다 제품명이 익숙한 회사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애경그룹은 오랜 세월 생활 곳곳에서 우리 삶과 함께해 왔다.  1954년 비누 제조업체에서 출발해 성장을 거듭하며 70년 만에 화학, 생활용품·화장품, 항공, 백화점, 부동산 등 30여 개 계열사를 갖춘 연 매출 4조 원대의 기업이 됐다. 오늘날 애경그룹이 있기까지 대한민국 최초의 대기업 여성 총수인 장영신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애경의 위풍당당한 여장부가 탄생하다
24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한 장영신. 상대는 애경유지공업의 창업주 채몽인이었다. 

6·25 전쟁 직후는 모든 것이 궁핍했던 시절이었다. 위생은 사치였지만 채몽인 회장은 서민들의 위생을 위해 1954년 비누 사업을 시작했다. 국산 비누가 귀했던 당시 버려진 지방과 기름에서 뽑아내 만든 세탁비누는 대히트를 쳤다. 
/사진=애경그룹
세탁비누의 판매에 이어 1956년 대한민국 최초의 미용비누인 ‘미향’도 탄생한다. 미향은 당시 월 100만 개가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 애경은 성공 가도를 달리며 1966년 고급스러운 우유 비누를 내놓았다. 같은 해 국내 최초의 주방 세제인 트리오를 출시하며 주방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행복과 동시에 불행도 찾아왔다. 1970년 채몽인 회장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막내아들이 태어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살림만 하던 주부 장영신은 34살의 나이에 남겨진 네 명의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다. 

“엄마 걱정마, 학교 앞에서 뽑기 장사하면 되잖아”
망연자실한 일상 속 큰아들의 한마디가 세상에 나오는 계기가 됐다. 장영신 회장은 아무도 모르게 낙원동의 경리 학원에 다니며 타자나 산수 등 경영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공부했다. 마침내 1972년 애경유지 사장으로 첫 출근을 하며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유난했던 당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물론 1970년대 여자가 사업을 이끌어가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회사 내 간부들은 장영신을 오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몇몇 임원들은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비누와 세제 시장에서 애경을 향한 생활용품 기업들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상대는 럭키화학과 동산 유지였다. 장영신 회장은 울산공업단지에 애경유화의 전신 ‘삼경화성’을 설립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이곳에서 비누, 세제의 원재료를 직접 생산하며 현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마주하기도 했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장영신 회장은 화장품 분야까지 발을 넓혔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1980년대에는 계열사가 무려 18개로 20개에 육박할 정도였다. 경소비재 비누업 유통에 머물러 있다가 중공업 등 다방면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1980년대 국내 대기업들이 부동산 개발에 뛰어들던 시기, 때마침 장남 최용석이 미국 유학을 다녀와 백화점 사업을 제안했다. 소비 욕구가 커지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백화점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화점 사업은 이미 신세계와 롯데 등 국내 대기업들이 진출해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장영신 회장은 번화가의 중심이 아닌 공단 지역인 구로에 백화점을 짓기로 한다. 구로는 애경의 시작이자 발전의 반석이 된 제품들을 생산한 곳이다.

대기업과 출혈 전쟁을 피한 애경백화점
우려와 기대 속에 생활 편의 시설이 없던 서울 서남부 지역에 애경백화점이 탄생했다. 구로 일대에 첫 백화점이 생기자 따뜻한 물이 나오는 백화점 화장실에 몸을 씻고, 김장철에는 배추를 가져와 소금에 절여가는 고객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속출하기도 했다. 당시 백화점의 깨끗한 화장실은 지역 주민들에게 신세계였다. 

직원들의 불만이 계속 쌓여가자, 장영신 회장은 애경백화점을 드라마 촬영 장소로 협찬해 마케팅에 승부수를 띄운다. 차인표, 신애라 주연의 드라마 ‘사랑은 그대 품안에’는 큰 인기를 끌었고, 애경은 백화점 매출과 이미지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사진=AK플라자
이후 강남이나 도심권 같은 고급 상권보다는 중저가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겨냥한 입지를 선택했으며 면세점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 결과 AK플라자는 롯데와 신세계, 현대에 이어 유통 제4위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위기의 애경
이후 여성 CEO로서 독보적인 역할을 해내는 장영신을 향한 정치계의 러브콜이 오기 시작했다. 2000년 구로구 지역 후보로 출마해 16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러나 장영신 회장의 정치 인생은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당선 후 한나라당에서 제기한 불법 선거 운동 의혹에 대해 대법원이 선거 무효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장영신 회장이 정치권에 눈을 돌린 사이 애경 백화점의 성장은 주춤했고, 설상가상 세제와 비누 등 생활용품 사업도 무한 경쟁 시장 사이에서 위태로웠다. 그러던 중 제주도에서 민간 항공 사업을 제안했다. 항공은 담대한 여장부인 장영신 회장도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분야였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장영신 회장은 다시 한번 결단력을 발휘했다. 그 결단력의 배경에는 남편이 있었다. 채몽인 회장은 재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출신이었으며 장례 부의금을 제주도 장학회에 기부할 정도로 제주도와 인연이 깊었다.  당시 제주도민들의 가장 큰 고통이 육지를 다닐 때 항공료가 비싸다는 점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도민들의 민원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직접 저가항공 비즈니스를 추진했다. 하지만 항공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국내 항공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협조를 받아야 했다. 

항공으로 비상한 애경
애경에게 항공은 자칫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국내 공항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중심으로 운영되는 특성상 노선 스케줄에 있어 불합리하게 저비용 항공사들이 나쁜 시간대로 비행시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제주항공
불리한 상황 속 2005년 애경이 75%, 제주도가 25%의 자본을 투자해 제주항공이 설립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에 이은 우리나라 세 번째 민항사다. 제주항공은 다른 항공사에 비해 저렴한 비용에 승부를 걸었다.  저가 항공만의 장점을 내세우며 고객 유치에 온 힘을 기울였지만, 항공 사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저 비용에 따른 서비스와 안전성의 문제로 저가 항공이 악평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제주항공은 5년 동안 적자에 시달리며 안팎으로 시달렸으며 급기야 제주도는 더 이상 추가로 투자가 힘들다는 통보를 해왔다. 그럼에도 애경은 제주항공을 포기하지 않고 AK면세점을 롯데그룹에 매각하며 자금을 확보하는 등 총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애경의 노력 끝에 마침내 제주항공은 비상하기 시작했다. 2009년 국제 항공 안전 인증을 받아 안정성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고, 국내 저가 항공 최초로 국제선 취항에 성공해 국내 항공 빅3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때마침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 안정성을 인정받은 저가 항공사들은 더욱 주목받았다.  중국, 일본, 동남아로 국제선이 확장됨과 동시에 한류스타를 내세워 아시아권에서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등 제주항공의 거침없는 비상은 계속됐다. 제주항공의 성장은 기존의 항공사를 자극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2007년, 2008년 연달아 진에어와 에어부산을 설립하기도 했다. 제주항공은 2020년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했지만, 팬데믹으로 항공시장이 침체하자 무산됐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홀딩스와 대동 인베스트먼트를 상대로 계약금 등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내며 얼마 전 승소했다.

애경그룹의 현재는
애경그룹은 지난 1994년에서 2011년 사이 벌어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책임이 있는 기업이다. SK케미칼이 쓴 원료에 문제가 있었고 애경과 이마트 상품으로 판매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금고 4년을 선고했다. 

얼마 전에는 장영신 회장의 손녀이자 애경그룹 3세인 채문선 탈리다쿰(Talitha Koum) 대표가 유튜버로 본격 데뷔하기도 했다. 채 대표는 1986년생으로, 장영신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의 장녀다.  애경그룹의 핵심인 생활뷰티기업 애경산업은 뷰티로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전년(4931억 원) 대비 3.0% 상승한 50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다만 3분기 기준으로는 애경산업의 뷰티 매출이 570억 원으로, 전년(602억 원) 대비 5%가량 내려갔다. 중국 경기가 여전히 살아나지 못하면서 전체 실적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해석된다. 
/사진=애경산업
그러나 일본, 미국에서는 K뷰티가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애경산업의 대표 색조 라인 ‘에이지투웨니스’와 ‘루나’가 일본 현지 팝업을 통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해 가고 있어서다.  다만 국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생활용품 매출은 정체를 겪고 있다. 올 3분기 매출이 전년(1137억 원)보다 4.8% 준 1082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3분기까지 누적 매출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애경산업 대표 세탁세제인 리큐와 주방세제인 트리오 등 전반적으로 판매가 부진했다. 애경산업은 대신 덴탈케어 브랜드인 ‘바이컬러’를 새로 선보이면서 생활용품 포트폴리오 강화에 나선다. 또한, 국내를 넘어 북미와 유럽, 일본 등 해외 생활용품 시장을 개척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