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40주년 앞둔 ‘피자헛’의 흥망성쇠
2025-11-06 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함께 즐겨요 피자헛”이라는 슬로건과 빨간지붕 형태의 로고. 이태원 1호점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 ‘피자’라는 신(新) 문물을 퍼뜨린 기업. 바로 ‘한국 피자헛 유한회사’다.
당장 내년에 40주년을 앞둔 ‘피자헛’은 최근 유례없는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가맹점주들이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패소해 200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떠안게 된 이후,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는 급한대로 막았지만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한때 피자는 뜨거워야 맛있다며 ‘배달된 피자가 뜨겁지 않으면 공짜’라는 화끈한 마케팅까지 펼쳤던 피자헛이지만, 시대와 입맛이 변하면서 피자헛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모양새다.
대한민국에 피자 DNA를 전파한 피자헛의 역사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자왕으로 불린 기업인 성신제 씨가 1984년 동신식품을 세우고 피자헛의 한국 라이센스를 얻어 1985년 서울 이태원동에 1호점을 개설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피자’라는 음식 자체가 국민들에게 생소했지만, 불고기 피자 등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면서 서서히 인기를 끌었고 매장 역시 고급화 전략을 밀어붙여 차원이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태원 1호점을 시작으로 52개까지 지점을 늘린 피자헛은 2000년대 초반까지 매장에서 먹는 프리미엄 피자로 대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한국에서 피자헛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자, 미국에서 피자헛을 운영하던 모회사 펩시코 인터네셔널은 돌연 프랜차이즈 계약을 해지하고 직영을 통보했다. 기획안 한 장으로 본사를 설득해 계약권을 따냈던 성신제 씨는 미국 본사와 소송전을 벌였지만 끝내 320억원에 국내 경영권을 내주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본사가 직영 통보를 한 이후, 피자헛은 스물스물 무너지며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선 피자헛을 필두로 경쟁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1990년 이대 1호점으로 시작한 토종브랜드 ‘미스터피자’가 등장했으며, 같은해 ‘도미노피자’도 국내에 진출했다. 이외에도 ▲1996년 피자에땅 ▲2000년 피자나라치킨공주 ▲2004년 피자스쿨 ▲2005년 피자알볼로 ▲2006년 피자마루 ▲2006년 오구쌀피자 등이 등장했다.
경쟁사들이 늘어나면서 2008년 말 공시기준 매출 4000억원을 넘기는 등 압도적 1위 자리를 지켰던 피자헛은 2014년 매출액이 1000억원대까지 무너졌다. 영업이익 역시 2013년부터 적자 전환됐다.
한국피자헛의 과거 실적을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피자헛이 ‘유한회사’기 때문이다. 피자헛은 지난 2007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는데, 공시의무는 물론이고 외부 회계감사 의무도 없어서 사실상 실적이 ‘깜깜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재는 일정 규모 이상이라면 유한회사도 외부감사 대상에 포함된다.
실적 저하로 인한 어려움이 계속되는 와중에 2015년 한국 피자헛은 직영점 75개 중 61개를 가맹점으로 전환했다. 직영점은 미국 본사에 로열티 3%를 내지만 가맹점의 경우 미국 본사에 로열티 6%를 내기 때문에, 미국 본사의 ‘배불리기’를 목적에 둔 가맹점으로의 전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뿐이랴. 한국피자헛은 2007년부터 월 매출의 0.55%, 2012년 4월부터 월 매출의 0.8%에 달하는 돈을 이른바 ‘어드민 피(Administration Fee)’ 명목으로 매달 징수해갔고 점주들이 이를 문제 삼으며 소송에까지 휘말렸다. 대대적 구조조정의 여파로 노조와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등 안팎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업계에서는 한국피자헛의 ‘매각설’까지 돌았다. 당시 한국 피자헛에서는 매각설을 극구 부인했지만, 결국 2017년 미국 Yum! 브랜드가 보유한 한국 피자헛 지분 100%가 오차드원에 매각됐다. 2017년 피자헛 매출은 208억원, 영업이익은 -12억원이었다.
이후 한국 피자헛은 재기를 위해 1+1, 9900원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무리한 프로모션은 고스란히 ‘본사의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가맹점주들의 피해로까지 이어졌다. 2018년 무렵부터 동의 없이 원·부재료 가격에 차액을 붙여 납품하는 등 ‘차액가맹금’을 받으면서 점주들을 두번 울렸다.
어드민 피에 이어 차액가맹금까지. 한국 피자헛 본사가 가맹점주들로부터 착복한 금액에 대해 법원은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려왔다.
실제로 2016년에는 ‘어드민 피’가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차액가맹금과 관련해서는 지난 9월 부당이득인 2016~2022년분의 차액가맹금 210억원을 모두 돌려주라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받은 한국피자헛은 2개월 만에 회생절차 신청과 동시에 자율 구조조정 프로그램(ARS)을 신청했다. 2022년 -2억5612만원, 2023년 -45억2240만원 등으로 적자가 계속돼오는 상황에서 210억원의 반환금은 너무나도 큰 금액이라는 위기감이 회생절차 신청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한국피자헛은 회생절차 신청 등과는 관계없이 전국 피자헛 매장은 정상영업 중이라며 가맹점주와 소비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 피자헛의 재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피자업계에 경쟁사가 많다는 점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더이상 ‘배달피자’를 매력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은 커다란 변수다. 일례로 CJ제일제당‧풀무원‧오뚜기 등 다양한 업체들이 ‘냉동피자’를 프리미엄화 시키면서 불황 속 소비를 줄여야 하는 국민들이 비싼 배달피자 대신 냉동피자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피자헛의 마케팅 전략 중 하나였던 ‘뜨겁지 않으면 공짜’라는 총알배달도 의미가 없어졌다. 냉동피자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뜨거운 피자’를 맛볼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피자헛을 사먹어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시장의 선택을 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기다 부당하게 챙겨간 돈 200억을 돌려주지 못해서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한국 피자헛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선도 따갑다. 나의 소비가 가치 있는 일로 이어지길 바라는 현대의 똑똑한 소비자들이 과연 지금의 피자헛을 택할지가 의문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