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마술사
2025-11-08 어기선 기자
마법와 마술 혼존했던 시절
중세 이전까지만 해도 마법사와 마술사가 혼재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성경에 나오는 동박박사들은 ‘마술사’ 또는 ‘마법사’의 성격이 강했다. 동방박사는 별을 통해 신과 소통하면서 사람을 치유하기 때문에 ‘마술사’ 또는 ‘마법사’라고 불러야 하지만 중국을 통해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번역이 됐기 때문에 ‘동방박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중세 들어서 ‘마법’과 ‘마술’이 점차 분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법을 행하는 사람을 마법사로 마술을 하는 사람을 마술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법을 행하는 사람들 중에 악마들을 위한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면서이다. 이에 ‘마법’ 대신 ‘마술’이 남게 됐다. 즉, 일반인들에게 여흥거리로 남은 기술을 행하는 사람이 마술사가 됐다. 마술사 중에 왕이나 귀족들을 상대로 한 사람도 있고, 일반인들을 위한 마술사도 있었다. 그러면서 마술사는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하게 남게 됐다.오늘날 마술사 개념은
오늘날 마술사와 같은 개념은 19세기초 프랑스 장 유진 로베르 우댕에서부터이다. 후딘은 184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사람이나 물건 등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등의 마술을 했다. 또한 스코틀랜드 조 헨리 앤더슨이 현대적 마술쇼를 런던에서 성공적으로 하면서 마술이 ‘엔터테인먼트’로 일반 사람들에게 각인이 됐다. 그러면서 무대에서 마술을 하는 방식이 점차 정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마술은 공연의 부수적인 내용이었지만 이후 마술은 ‘공연’의 주요 내용이 됐다. 하지만 1930년대 대공황과 영화산업의 출현으로 무대 공연이 점차 사라지게 됐다. 그러면서 관객과 함께 하는 그런 마술이 점차 발달하기 시작했다. 즉, 그 이전까지만 해도 무대와 관객의 거리가 있고, 그에 따라 주로 무대 위에서 큰 동작으로 하는 마술이 유행을 했지만 점차 무대와 관객의 거리가 좁아지면서 그에 따라 잔기교를 부리는 마술이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마술이 사라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튜브 등 SNS가 발달하면서 SNS와 함께 하는 마술이 주류를 이루면서 무대 마술은 점차 사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