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여행기④] 7백 년 역사의 변천

2025-11-11     김진혁
사진=백제박물관
[파이낸셜리뷰] 백제는 한때 지금의 서울, 황해도 일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면서 약 7백 년의 역사를 구가한 고대 국가였다. 왕도의 변천에 따라 한성시대, 웅진시대, 사비시대로 나누며, 678년간 31명의 왕이 다스렸다. 성왕의 사비천도(538년)를 계기로 시작된 사비시대는 관리들의 상하 서열을 구분짓는 체계인 16관등제(官等制)와 내관(內官) 12부와 외관(外官) 10부로 구성된 국왕 중심의 행정조직인 22부사제(部司制)가 시행됐다.

한성(漢城)시대(BC 18∼AD 475년)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를 정복하였던 고구려는 광개토왕 장수왕 전성기에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한다. 남진 정책으로 수도를 국내성에서 지금의 평양성으로 옮겼고, 5세기 후반 백제의 수도인 한성(위례성)을 함락시켰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백제는 왕실의 권위 추락과 함께 국운(國運)이 급격히 기울어 황급히 수도를 웅진(熊津)으로 옮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 위치했던 마한 소국을 제압하여 백제의 영역으로 흡수한다.

웅진(熊津)시대(475∼538년)

웅진지역으로 천도(遷都)를 단행한 백제는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지는 듯하였으나, 동성왕(東城王, 재위 479∼501)과 무령왕(武寧王, 재위 501∼523)이라는 뛰어난 지도자를 맞이하면서 토착 귀족들의 난동을 제압하고 실추되었던 왕권을 서서히 회복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내치(內治)에 힘쓰는 한편, 외적으로는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실시하여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국력을 회복하고 국가 재건의 발판을 마련한다. 백제가 당시 웅진지역이 전쟁 등 외침에 대비하기 유리하다는 조건 때문에 일시적인 도읍지(都邑地)로 사용하기는 했으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는 수도로서의 입지 조건은 다소 열악하였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의 이전을 계획한다. 이때 선택된 새로운 수도가 바로 사비(泗沘) 지역이며, 사비는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扶餘) 지방에 해당한다.

사비(泗沘)시대(538∼660년)

백제 문화는 부여에서 최고의 부흥기를 맞게 된다. 백제인의 우수한 공예 제작기술로 불상과 세계적인 건축 감각을 자랑했던 사찰을 새워 백제 장인의 예술혼을 발휘했다. 당시 백제는 국내는 물론이고 이웃한 일본의 고대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높은 수준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백제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성충과 흥수 같은 충신들을 귀양 보내 죽이는 등 혼란에 빠지게 된다. 무리한 왕권 강화로 인한 왕자들의 다툼과 귀족들의 분열로 백제는 망할 조짐을 보였다. 이 틈을 노려 신라의 태종무열왕와 동맹국 당나라는 당시 동아시아의 명장이었던 김유신과 소정방을 필두로 하는 연합군을 구성하여 백제 정벌에 나섰다. 상대등 김유신의 5만 정예군과 당 고종이 준비한 13만 대군 출병으로 사비성은 함락되었다. 당 황제는 사로잡힌 의자왕을 꾸짖고는 용서하였다. 의자왕은 같은 해에 노망으로 사망했다. 백제 멸망 이후 4년간에 걸쳐 백제의 왕족 유신 유민들의 백제 부흥 운동도 실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