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19일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2025-11-19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63년 11월 19일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연설을 한 날이다. 3분짜리 짧은 연설이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로 평가된다. 또한 현대에도 많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게티즈버그 연설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무엇보다 아직 남북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게티즈버그 연설을 두고 남부에서는 더욱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미국 아우르는 연설

게티즈버그 연설은 남북전쟁의 승패가 어느 정도 갈린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곧바로 행해졌다는 점이다. 죽은 병사들을 위로하자는 차원에서의 연설이었다. 그러면서 무엇 때문에 남북전쟁이 일어난지에 대한 명분을 찾아야 하는 연설이었다. 링컨은 3분이라는 짧은 연설에서 이 모든 것을 아우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연설에는 ‘북부’ 또는 ‘남부’ 또는 ‘전사자를 위로한다’는 등의 내용이 아예 없다. 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도 1830년 1월 26일 대니얼 웹스터의 ‘헤인에게 답한다’라는 상원 연설에서 먼저 나온 말이다. 즉, 링컨이 먼저 한 말이 아니다. 지금은 게티즈버그 연설을 명연설이라고 평가를 내렸지만 당시에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북부 입장에서 남부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연설이었기 때문이다.

남부 또는 북부 이야기 없어

그 이유는 남북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링컨은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바로 그 싸움터의 일부를 이곳에서 제 삶을 바쳐 그 나라를 살리고자 한 영령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봉헌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했다. 전쟁에 대한 그 어떠한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전사한 전사자에 대한 위로의 글만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남부군은 물론 북부군에게도 불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부 입장에서는 패색이 짙어진 마당에 남부에 대한 위로의 단어라도 나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북부 입장에서는 북부가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승리를 했으니 그 승리에 대한 치하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연설에서는 그런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았으니 게티즈버그 연설에 대해 남부와 북부 모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서는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게티즈버그 연설을 살펴보면 ‘명연설’이다. 그것은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을 생각한 것이다. 즉, 게티즈버그 전투로 인해 남북전쟁이 거의 마무리가 된다는 것을 링컨이 깨닫고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을 생각하면서 연설을 한 것이다. 그것은 남부에 대한 위로를 담지 않고, 북부에 대한 칭찬을 담지 않음으로써 ‘하나의 미국’을 내세운 것이다. 만약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남부나 북부 어느 편을 드는 그런 연설을 했다면 남북전쟁은 더욱 길어졌을 것이고, ‘하나의 미국’이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링컨은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을 생각하고 게티즈버그 연설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