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는 것이 행복이다’ 참행복나눔운동, 문광순 이사장을 만나다

대한민국에 퍼진 ‘갈등’ 경보, 해답은 사랑을 담은 나눔에 있다 ‘참행복’ 전파, 미래 세대를 위한 범국민운동 선언 

2025-11-22     김희연 기자
문광순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장충동 참행복나눔운동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백발의 노인이 기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참행복나눔운동 문광순 이사장(1942)으로 단체가 설립된 2013년부터 조건 없는 나눔의 가치를 꾸준히 전파하는 중이다. 반전은 그가 사회운동가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캐나다 유학길에 올라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림원 연구원, 한국계면공학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돕는 일이 좋아 선생님이나 목사님을 꿈꾸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현실적인 먹고사니즘(먹고살다와 –ism을 더한 합성어)의 문제로 공학도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문광순 이사장인 쌓아 올린 학문적 업적과는 별개로 그의 일생에 수많은 행복이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참으로 감사한 인생
“감사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

답은 감사한 마음에 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온 문광순 이사장의 발자취는 누군가를 대하는 말과 행동, 표정에도 그대로 묻어났다. 기자에게도, 늘 마주하는 동료에게도, 식당 종업원에게도, 갑작스레 전화가 걸려 온 보험사 직원에게도 몸에 밴 감사 인사를 여러 번 전했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대가 없이 건넨 호의가 크고 작은 행복으로 다가왔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문광순 이사장은 그것을 ‘참행복’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20여 년 전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비행 길에 올랐을 때의 일화다.  당시에는 이스라엘로 향하는 직항이 없었기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경유해야만 했다. 10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터키 공항에서 문 이사장은 출국 수속을 돕던 한 유일한 한국인 직원을 발견했다. 낯설고 먼 타지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젊은 한국인 청년을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나라 국민을 위해 이렇게 일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여행이 더욱 편안해졌습니다.”

그와 악수를 한 후 다시 이스라엘로 향하는 비행기를 체크인하려던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비행기 표가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전 요청한 적이 없는데요.”

직원은 “때마침 비즈니스석이 한자리 비어서 저기 매니저님이 비행기 표를 업그레이드해 드렸다”고 답했다. 진심이 담긴 감사가 또 다른 감사로 돌아온 ‘참행복’의 순간이었다.

“살면서 최소 몇 번씩의 참행복했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아빠한테 혼나고 심술부리던 개구쟁이가, 머리 쓰다듬어 주는 낯 모르는 할아버지에게 입에 물고 있다 건네준 막대 사탕 한 알 맛, 한여름 땀에 흠뻑 젖은 명동 골목 호떡 장수 젊은이에게 건넨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공짜 호떡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 맛, 이같이 아무런 바람 없이 작은 되로 건넨 선의가 큰 말로 가득 되돌아왔을 때의 잔잔한 행복은 감동이었습니다.”

문 이사장은 각 일화에 담긴 ‘감사’와 ‘나눔’이라는 참행복에 이르는 공통된 키워드를 설명했다.

마음이 가난한 사회
안타깝게도 이 같은 ‘참행복’의 사연은 갈수록 미미해지는 현실이다. 끊임없는 경쟁 구조에서 살아남으려면 주변보다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마인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성공’보다 ‘감사’와 ‘나눔’의 가치가 우선시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문광순 이사장은 “나 혼자만 맞이한 성공 끝에는 점점 허무만이 남으며,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OECD 38개국 기준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33위로 최하위 랭크에 속한다. 소득이 오르고 먹거리는 풍족해졌다지만 마음은 가난해진 것. 이에 따라 젠더갈등, 세대갈등, 노사갈등, 이념갈등 등 각종 사회갈등도 최고조를 달하고 있다.

참행복나눔운동
참행복나눔운동은 이처럼 나눔의 가치가 점점 옅어지고, 서로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는 각박한 위기 사회를 맞아 미래 세대에게 참행복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2013년 설립됐다.

행복한 나눔이 미래의 희망이라는 데 공감한 과학기술계 리더들과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을 중심로 창립됐으며 자신을 비롯해 가정, 이웃, 사회, 나아가 국가가 참 행복하게 하자는 국민정신운동인 것이다.
문광순

“노벨상, 올림픽 금메달, 억만장자, 대통령이 꿈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와 같은 세상적 행복을 성취한 모든 사람은 일단 이루고 보니 그렇게도 간절히 찾던 행복이 아니었다고 한결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랑과 희생에 기반한 나눔이 이뤄져야 합니다. 내 것을 나눌 때 비로소 나의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게 바로 참행복입니다.”

참행복나눔운동은 2015년에 보건복지부에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그동안 대학총장 포럼, 원로 강연회, 참행복나눔포럼, 감사와 선행일기 보급, 다문화가정 지원사업, 청소년 멘토링 지원사업, 대학생 감사운동 멘토링 등 대학과 공직사회, 가정, 거리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원로 석학들의 참나눔 열기도 대단하다. “참행복나눔운동에는 제일 존경하는 분들만 모셨습니다. 지금 내가 83세인데 후원회 회장을 맡고있는 조완규 명예회장님이 95세신데도 제일 열심히 하고 잘하십니다. 104살 철학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님도 계시고요.”

지난 봄에는 서울 중구 장충동 본부에서 총회를 열고 올해부터 행복나눔 운동을 범국가적 정신운동으로 펼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들이 미래에 행복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인 범국민운동인 만큼, 마중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적극적인 펀딩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후원회를 조직하고 곳곳에서 캠페인을 펼치는 중입니다. 참행복나눔운동에 관심을 가진 개인 후원인, 기업 후원인, 기관 후원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랍니다” 

올해로 창립 11주년을 맞이한 참행복나눔운동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협업해 한림원 회원 중 10%를 사단법인 회원으로 초빙하고 한림원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시작은 감사와 선행일기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중생을 위한 적선 보시로 해탈하여 열반에 이르라’
‘군자는 인이라’

“옛 성현의 말씀도 모두, 이 험한 세상에 나서 참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밝혀 주는 진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참행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을 헤매고 있습니다.”

사실 참행복나눔운동의 조건 없는 나눔 정신은 동서고금 철학자들이나, 현세의 심리학자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문광순 이사장은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참나눔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시작된 활동이 일상에서의 감사와 선행 일기다. 감사와 선행 일기는 ‘당나행’ (당신이 나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을 목표로 삼는다. 2020년부터 ‘감사와 선행 일기’를 고등학교, 대학, 군대, 개인 등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감사일기와

“감사일기는 이미 전 세계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한 일을 찾고, 하루에 1가지 선행을 하며, 딱 100일만 써 보세요. 매일 매일 감사한 일을 다섯가지 씩 찾고 좋은 일을 한다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과정을 잘 견디며 100일을 써나간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는 감사일기 쓰기라는 반복된 연습이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부정적으로 편향됐던 두뇌가 균형을 찾는다고 설명한다. ‘나’ 중심의 시야가 ‘너’와 ‘우리’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여기에 더해 의미 있는 삶을 살 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행복나눔운동은 지금까지 약 10000권이 넘는 ‘감사와 선행 일기’를 보급했다. 카이스트, 대구 경북 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에서 감사문화에 대한 강연과 함께 보급했으며, 지난해에는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에 1000권을 기증한 바가 있다.
행복일기
올해 10월에는 인간의 감정 상태도 점검해서 일상생활에서 행복한 상태인지를 점검할 수 있는 자가진단표를 첨부한 새로운 형태의 행복일기를 개발했다. 

배워서 남 줘라, 참행복이 모두에게 닿는 순간까지
“참행복나눔운동의 가장 큰 보람은 다문화가정 멘토링을 하며 세 명의 손자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문광순

문광순 이사장은 “돈이든 지식이든 내가 갖고 있는걸 남에게 나눠줘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가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약 10년 전 어머니가 일본인이고, 아버지를 여읜 말썽꾸러기 삼형제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경계했지만, 이 아들과 가족이 되기로 결심하고 계속해서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어요. 자주 만나 밥도 사주고 수학 과외를 시키며 기초부터 가르쳤습니다. 때로는 시골에 데려가서 고추를 따거나 청계천을 함께 걸으며 도심 속 자연을 만끽하게 했지요. 이렇게 10년 넘게 손주들처럼 보살피면서 내 가족이 됐습니다.” 

“첫째는 어느 날  철이 들었는지 머리를 빡빡깎고 와서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됐어요. 하루는 밥값을 먼저 계산하고 뒤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참 기적 같아요. 둘째도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서 앞으로 보건복지부에 갈 생각으로 잘 생활하고 있어요. 

어릴 적 대인기피증이 있던 막내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이놈을 붙잡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세상과 자연을 맛보게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보란 듯이 잘 성장했어요. 포토그래픽 메모리가 있는 막내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책임지는 사학자를 꿈꾸며 장학금을 받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경제적 지원만 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정서적 유대감과 인생의 목표를 심어준 멘토였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라 불리며 진심 어린 고마움을 들을 때마다 문 이사장은 참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내가 가진 것이 크든 작든, 누군가와 나누는 순간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행복을 키워갑니다. 나눔은 누군가를 돕는 것을 넘어,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입니다. 참행복나눔운동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기를 소망합니다.”

문광순 이사장이 전파하고자 하는 ‘참행복’은 단순히 나눔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씨앗이다. 작은 감사와 선행이 돌고 돌아, 결국은 자신과 사회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