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27일 교황 우르반 2세 십자군 전쟁 Deus Vult 선포

2025-11-27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095년 11월 27일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반 2세가 대중 앞에서 1차 십자군 전쟁을 선포한 날이다. 서유럽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서유럽 역사를 십자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이날 교황 우르반 2세의 선포는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다만 십자군 전쟁이 ‘종교전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의 가장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전쟁이었지만 비잔틴제국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는 등 인간의 추악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Deus Vult

셀주크 투르크가 비잔틴제국의 땅이었던 소아시아를 빼앗으면서 비잔틴제국 황제는 위기를 느껴야 했다. 이에 교황 우르반 2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1095년 클레르몽에서 공의회를 소집했다. 우르반 2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가 박해를 받고 있다면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이때 Deus Vult(데우스 불트)라고 외쳤다. 우리말로 ‘하나님이 원하신다’로 풀이된다. 이 말은 십자군 원정의 구호가 됐고, 봉건 영주들이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게 됐다. 우르반 2세는 ‘Deus Vult’를 외쳤지만 계산은 복잡했다. 로마가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분열이 되면서 기독교 역시 카톨릭과 동방정교회로 분리가 됐다. 카톨릭은 교황이 맡았지만 동방정교회는 동로마제국 황제가 맡았다. 교황 입장에서는 통일된 기독교제국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비잔틴제국 황제가 교황 우르반 2세에게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교황이 비잔틴제국 황제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Deus Vult’를 외쳤다.

또 다른 계산도

우르반 2세가 ‘Deus Vult’를 외친 또 다른 이유는 서유럽이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인해 분열이 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됐다. 이것을 뒤집는 방법은 종교적 전쟁을 일으켜서 교황의 권위를 되찾는 것이었다. 교황 우르반 2세의 의도는 교황의 권위를 되찾는 것이었지만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하다. 당시 봉건시대는 장원제를 채택했다. 영지를 하사받으면 농노가 그 영지를 경작해서 영주에게 생산량을 농납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영지’의 주인인 봉건영주가 영지 하나당 여러명이었다는 점이다. 때로는 ‘왕’ ‘신하’ ‘교황’ ‘사제’ 등 여러 명이 영지 하나에 영주를 자처했다. 그러다보니 영지 쟁탈전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영주 한 명이 십자군전쟁을 떠나고, 만약 십자군전쟁에서 사망을 하게 된다면 영주 한 명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즉 입 하나가 줄어들게 된다. 장원제를 유지하는 중세시대에는 십자군 전쟁이 영지쟁탈전을 해소하는 하나의 해결책이 되는 것이다. 우르반 2세가 Deus Vult를 외침으로써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에게 명분을 줬다. 그것은 바로 면벌부이다. 교황청은 십자군에 참전하면 대사면을 해준다고 홍보를 했다. 이런 이유로 0차 십자군은 ‘민중십자군’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부랑자,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그들은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면벌 즉 벌을 사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