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2월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2025-12-03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016년 12월 3일은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6번째가 열린 날이다. 정식명칭은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이다.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가 열린 날이다. 서울에서만 주최 측 추산 170만명, 지방에서 62만명이 참여해서, 232만명이라는 규모로 집계됐다. 경찰 추산은 서울 32만, 지방 10만명 추산이다. 다만 경찰 추산은 소극적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청와대 앞 100m까지 진출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되면서 박근혜 퇴진 운동이 9월부터 계속 이어져왔다. 그리고 시위 규모가 점차 커졌다. 그러면서 ‘0차 범국민 행동’이라고 불렀던 것이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로 바뀌게 됐다. 그러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이 허용됐다. 주최측은 분수대가 있는 청와대 앞 30m까지 허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집시법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허용이 되지 않았다. 12월 2일 탄핵소추안 처리가 국회에서 이뤄지기로 했지만 대통령 3차 대국민담화에 따라 새누리당 입장이 번복되면서 12월 3일 대규모 집회가 열릴 수밖에 없었다. 3차 대국민 담화 직후 여당에서는 4월 퇴진론을 꺼내들었고 야당들도 이를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이에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로 이름을 붙여서 대규모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오히려 국회 압박

이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압박보다는 오히려 국회에 대한 압박의 성격이 강했다. 즉,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즉각 하야 하는 것은 물론 만약 국회에서 이에 대해 논의를 한다면 4월 퇴진론이 아니라 ‘탄핵’밖에 없다는 것을 국회와 정부에 알려주는 성격이 강했다. 결국 이 집회를 계기로 비박계가 탄핵 표결 참여를 결심하기로 했고, 친박도 어쩔 수 없다면서 탄핵에 참석했다. 당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인터뷰에 따르면 탄핵 표결에 예정됐던 12월 2일 당시까지 탄핵에 필요한 안정적인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시위로 인해 탄핵을 결심하게 됐다. 결국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1표, 무효 7표로 가결됐다. 6공화국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권을 바꾸게 됐고, 만약 국회 탄핵소추안이 부결됐다면 쿠데타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날 집회가 대한민국 역사를 바꿨다고 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주목했던 시위

무엇보다 이날 시위는 해외에서도 주목했던 시위이다. 왜냐하면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권을 바꿨던 시위였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촛불혁명’이라고 명칭을 붙일 수 있었다. 과거 5.16 쿠데타와 12.12 사건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군부가 총칼로 정권을 획득하고, 87년 민주화운동은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 등 피를 통해 직선제를 쟁취한 반면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상당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