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그에게 조국의 광복이란?

2018-08-15     전민수 기자
[파이낸셜리뷰=전민수 기자] 15일 오전 11시 KBS 1TV에서는 광복절 특집 ‘유일한, 독립을 말한다’를 방송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미육군전략처(OSS)는 한반도에 침투해 일본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목표로 ‘냅코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그런데 이 작전의 정예요원들은 다름 아닌 한국인. 그중 암호명 A의 신상은 시선을 끌었다. 나이 쉰에 가족을 남겨두고 특수 공작원이 되기로 한 사람, 그의 이름은 CIA 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유한양행의 창업주로 알려진 고(故) 유일한 박사였다. 유일한 박사는 작전에 참여하기로 한 후 어린 아들과 딸을 믿을만한 가정에 맡긴다. 살아서 돌아올 것을 장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성공한 사업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가 목숨을 걸고 독립에 투신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박사의 하나뿐인 손녀 유일링이 이날 방송에서 생생한 목소리로 전했다. 유일한은 1905년 10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향한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재정과 외교를 서서히 장악해가기 시작하자, 그의 아버지였던 유기연이 나라를 구할 인재가 되어 돌아오라는 당부와 함께 어린 아들을 떠나보낸 것이다. 유일한은 14세 때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해 군사훈련을 받고 24세에는 필라델피아 한인대표자회의에서 서재필, 이승만과 함께 결의문을 작성했다. 아울러 재미한인들이 참여한 군사조직 ‘맹호군’ 창설을 주도하고 OSS의 특수요원이 됐다. 그는 오랜 기간 준비된, 몸을 사라지 않는 독립운동가였다. 이후 나라가 주권을 되찾고도 그는 민족의 진정한 독립을 꿈꿨다. 그는 1964년 개인 주식을 팔아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배움을 포기했던 아이들이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왔다. 이날 방송에서 유일한 박사의 손자 유일링은 “할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조국이었다”며 “조국이 있은 다음에는 교육, 기업, 가정 순으로 가치 순서를 두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