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올해 3월11일 인천시 중구 인천대교에서 SUV차량이 정차 중이던 사인카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머리 등을 크게 다친 SUV 운전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지난해 3월29일에는 경부고속도로 기흥휴게소 부근에서 쏘렌토 차량이 일차로에 정차 중이던 ‘사인카’를 뒤에서 들이받아 3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으며, 한문철TV에서는 고속도로에서 사인카를 보지 못한 운전자가 굴착기와 추돌한 뒤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도 있었다.
본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정차 또는 서행 중이던 ‘사인카(Sign Car)’를 들이받는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인카가 제도권 밖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안전과 위험 사이…박상우 장관님, 고속도로 위의 ‘사인카’를 아시나요’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만일 고속도로를 달리던 나의 차량이 정차 또는 서행 중이던 ‘사인카(Sign Car)’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받게 된다면 과실비율이나 보험처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인 법률사무소 ‘율재’의 서기석 변호사는 “보통 과실비율은 1:9 또는 1:8 정도로 뒤에서 들이받은 차량의 과실이 훨씬 높게 잡힌다”며 “갓길에 불법주차된 화물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사실 불법주차한 차량의 과실이 더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인카도 사정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차 보험 표준약관에 따라 영업용으로 운영되던 차량과 부딪히게 되면 면책 대상이 된다. 이를 유상운송 면책조항이라고 한다”며 영업용으로 운영되던 사인카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이와 충돌한 차량은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8조 등을 살펴보면 ‘영리를 목적으로 요금이나 대가를 받고 피보험자동차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빌려준 때에 생긴 손해’에 대해서는 대인배상Ⅱ과 대물배상에서 보상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사인카는 ‘도로차단’이라는 특수한 업무를 하는 차량이기 때문에 서울시설공단이나 도로공사 또는 지자체에서 관장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사인카를 섭외하고 배치하는 상당수의 업무는 일반 건설사에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섭외 주체가 공단 또는 공사가 아니라면, 사인카는 명백히 영리를 목적으로 요금이나 대가를 받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영업용 차량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에서는 “도로차단업무에 쓰는 사인카는 대부분 지방청, 도로를 관리하는 기관이 보유장비를 가지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운수사업자가 아니어서 영업용 번호판인 노란색 번호판을 쓰지 않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국토부의 설명대로라면, 건설사에서 섭외한 사인카가 영업용 번호판을 달지 않고 버젓이 도로차단 업무를 불법적으로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문제 삼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도로 위의 사인카, 라바콘·신호수 두고 사고 방지해야
“사인카 관련 문제, 행정·법적 면에서 사각지대…국민 피해 없어야”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명백히 영업용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당수의 사인카들이 단순히 구조변경 등을 통해 운영하는 무허가‧무자격 업종이다 보니, 사고를 방지해야할 업무상 주의 의무를 제대로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2021년 1월 선고된 ‘업무상 과실치사’와 관련된 판결문을 살펴보면, 도로 점용 공사업무에 종사하는 자에게는 도로 2차로에 사인카 1대 및 라바콘 50개를 설치하고 사인카로부터 후방에 신호수 2명을 둬 공사현장 주변을 진행하는 차량을 1차로로 유도하게 하는 등 교통 및 공사현장에서 소속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사고를 미리 방지해야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피고인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 해서 현장에 설치돼있던 사인카가 현장을 이탈했음에도 사인카 후방에서 근무 중인 신호수들의 교통사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근무 중이던 신호수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사인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라바콘 및 신호수 2명을 두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운행하는 차량들을 잘 유도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분명한 업무상 과실에 해당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고속도로에서 사인카와 부딪힐 뻔 했다는 제보자 A씨는 “고속도로에서 잘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인카가 나타나서 급히 핸들을 꺾었다. 주변에 차량들이 없어서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정말 큰일날 뻔 했다”며 “현장에 신호수는 없었다. 사인카 근처까지 가서야 앞에 사인카가 정차해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기석 변호사는 “사인카 관련 문제가 여러가지로 행정적인 면과 법적인 면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다”며 “도로를 이용하는 선량한 국민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련 규제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