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17일. 경부고속도로 안성나들목 부근에서 초등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정차해있던 ‘사인카’를 들이 받았다. 이 사고로 버스기사가 숨지고 교사와 학생 등이 부상을 입으며 많은 학부모들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2021년 5월13일. 충북 청주시 당진영덕고속도로에서는 1톤 화물차가 사인카를 들이받고 옆 차로로 튕겨나가 주행 중이던 14톤 화물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사인카 운전자가 숨졌고, 동승자 및 작업자 등이 다쳤다.
#2023년 3월29일. 경부고속도로 기흥휴게소 부근에서는 쏘렌토 차량이 일차로에 정차 중이던 ‘사인카’를 뒤에서 들이받아 3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도로에선 도로 확장을 위한 도색작업이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24년 3월11일. 인천시 중구 인천대교에서 SUV차량이 정차 중이던 사인카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머리 등을 크게 다친 SUV 운전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정차 또는 서행 중이던 ‘사인카(Sign Car)’를 들이받는 사고는 매년 끊이질 않고 있다. 사인카는 주로 공사 중인 상황에서 차선을 변경하라고 안내를 해주는 ‘도로차단차량’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도로공사가 제출한 ‘최근 5년간(2018~2022년)의 고속도로 공사구간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해당기간 동안 사망자는 무려 50명, 부상자는 179명으로 모두 229명의 사상자가 고속도로 공사구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속도로를 보다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한 공사작업 탓에 연평균 10명의 국민들이 목숨을 잃는 꼴이다.
이러한 사고가 보도될 때마다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전방을 제대로 주시했더라면 없었을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건에 대해 법원에서는 전방주시 태만 등 안전불이행에 따른 사고라는 판단을 내린다.
물론 운전자들도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전방주시 의무를 다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도로차단차들이 법률상의 철저한 감시감독 하에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지 여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실은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흰색 번호판을 달고 있는 자가용 도로차단차들이 ‘불법임대’ 형식으로 무분별하게 도로차단 업무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업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일부 영세업체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일반 화물차를 튜닝해서 도로차단차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공인성적서가 없는 ‘짝퉁’ 충격완화 장치를 장착하는 바람에 인명피해로 이어지는가 하면 화물운송종사 자격증 조차 구비하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현장에 투입됐다가 사고를 유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쉽게 말해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도로차단’이라는 국민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다가, 이들이 초래한 피해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묻기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도로차단차는 일반 자동차와는 달리 도로통제 또는 차선변경 안내라는 ‘특수한 업무’를 하는 차량인 만큼, 높은 곳에서의 작업에 이용되는 고가사다리차처럼 특수작업형 특수자동차로 분류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른 화물자동차운수사업용 자동차 세부유형을 살펴보면, 그 어디에서도 ‘도로교통차단차(사인카)’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특수용도형은 물론이고 특수작업형 특수자동차에도 분류돼있지 않다.
실제로 차의 성격을 추정할 수 있는 ‘번호판 색상’만 놓고 보더라도 사인카가 특수차로 분류돼있지 않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번호판 색상은 자가용이 흰색, 택시‧버스 같은 운수용 차량과 화물차가 노란색, 영업용 건설기계가 주황색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로 위의 사인카들 상당수가 ‘흰색’ 번호판을 달고 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도로시설안전과 관계자는 “노란색 번호판은 영업용 차량으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도로차단업무에 쓰는 사인카는 대부분 지방청, 도로를 관리하는 기관이 보유장비를 가지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운수사업자가 아니어서 영업용 번호판인 노란색 번호판을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설기계에 해당되면 주황색 번호판을 쓰는데 현재 도로상에서 사인카가 건설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건설기계 부대시설 형태로 쓰는 것은 흰색 번호판을 많이 쓴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도로차단차는 운수사업자가 아니라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지만, 관련 법령 및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도로차단차 역시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이 이미 존재한다.
자동차운수사업법상 택시‧버스처럼 사람을 나르는 여객자동차와 달리 화물자동차 운송은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해 화물자동차를 사용해 화물을 유상으로 운송하는 사업’을 말하며,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제56조에 따라 자가용 화물차를 유상으로 화물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다. 자가용 화물자동차를 도로교통 차단용으로 유상 임대했다면 이 역시 불법에 해당한다.
국토부에서는 단속에 손을 놓고 있지만, 도로차단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들 중에서도 ‘노란색’ 영업용 차량 번호판을 사용하며 적법한 운영을 이어가는 곳들도 많다.
해당 업체들은 국토교통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고 관련 특허까지 등록해 전문적으로 사업을 지속하고 있지만, 이른바 ‘꼼수영업’을 하는 불법운영 업체들 탓에 불필요한 사고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장의 애로사항을 유발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한다는 것이 정부의 취지일지라도, 결국 도로차단차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결코 사각지대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