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진리를 향한 탐구, 인도 철학의 정수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
인류 지성사에 빛나는 고전, 동양 사상의 뿌리를 깊게 파고들다

인천투데이=신현수 시민기자 |

우파니샤드 | 정창영 편역 | 무지개다리너머
바가바드 기타 | 정창영 편역 | 물병자리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영화 <오펜하이머> 때문에 널리 알려진 경구다. '맨해튼 계획'을 주도한 오펜하이머가 핵 개발에 성공한 후에 했다는 말이지만, 물론 그가 처음 지어낸 말은 아니다. 인류사 불멸의 고전,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했던 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앞서 살다 간 인류의 성취에 기대고 있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다. 기독교는 불교에 기대고 있고, 불교는 힌두교에 기대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상좌부불교 ('소승불교'라는 말은 대승불교 쪽에서 소승 쪽을 깎아내리는 뜻으로 만든 용어로 가능하면 안 쓰는 게 좋다)와 닮은 점이 많다.

인도와 힌두 철학의 세계는 너무 크고 넓어서 헤아리기 쉽지 않지만,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등의 경전은 인도철학과 힌두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경전이다. 더 나아가 동양 사상, 심지어 인류가 그동안 쌓아놓은 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세 경전을 피해갈 수 없다.

인도 문명의 형성과 아리안의 역할

힌두교 경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도 역사를 간단하게라도 들여다봐야 한다. BC 2000년 무렵 자신들을 '아리아'('고귀한 사람'이라는 뜻)라고 부르는 민족이 유럽대륙에서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 북부지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토착민(드라비다족)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인도 문명을 탄생시켰다. 아리안이 토착민들을 누르고 이른 시간 안에 인도 대륙의 주류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차크라'를 빼놓을 수 없다. '차크라'는 '마차 또는 마차의 바퀴'라는 뜻이다.

바퀴를 장착한 마차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아리안의 힘이었다. 부처님의 별호 중 '법륜성왕'이 있는데, '법륜'은 '법과 지혜의 바퀴'이니, '차크라', 즉 '바퀴'라는 말은 불교를 통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아리안들은 자신들의 종교도 들여왔는데, 함께 가져온 수많은 찬가와 주문들이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리안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고정된 지역이 없었는데, 인더스강 유역에 정착하면서 그들의 생활도 농경 생활로 바뀌기 시작했다.

농경 생활을 하면서부터 제사를 올리는 고정된 장소가 필요했고, 제사를 담당하는 사제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성스러운 기도문을 읊는 역할을 했던 자들을 '브라만'이라고 불렀고, 그 후 '브라만'은 사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제사 때 읊는 주문과 제사 절차는 너무나 복잡해서 '브라만'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브라만에게 종교적 정치적 권력이 집중되면서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인도 카스트 제도의 시작이다.

또한 브라만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세상과 만물의 기원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제사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또한 점차 그들의 관심을 초월적인 주제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신은 누구인가?" 등이었다.

우파니샤드_무지개너머다리_정창영 편역
우파니샤드_무지개너머다리_정창영 편역

<우파니샤드>, 스승의 발밑에서 전해지는 지혜

쇼펜하우어가 "이 세상의 모든 책 가운데 가장 가치 있고 숭고한 책"이라고 말한 <우파니샤드>는 산스크리트어로 '가까이 아래에 앉는다'는 뜻이다. '우파'는 '가까이', '니'는 '아래로', '샤드'는 '앉는다', 곧 '스승의 발밑에 앉아서 전수받은 가르침'을 가리킨다. 제자가 묻고 스승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파니샤드>의 저작 연대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경으로 알려졌지만,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고대 문헌이 대부분 그렇듯 <우파니샤드>도 누가, 언제, 어떻게 썼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우파니샤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존하는 <우파니샤드>만 해도 백여 개가 넘는다. 요즘 말로 하면 '집단창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파니샤드>는 "나는 누구인가? 육체가 나인가? 생각하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나인가? 아니면 진정한 나는 따로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경전이다.

<우파니샤드>의 주요 개념, 브라만·아트만·요가

'브라만, 아트만, 요가' 등이 <우파니샤드>의 주요 개념인데, 하나씩 살펴보겠다. '브라만'은 산스크리트어로 '힘'이라는 뜻이다. <우파니샤드>의 중심 사상으로 우주의 근본원리를 가리킨다. '브라만'은 우주를 창조하고 일체를 지배하는 근본 원동력이다.

우주의 일체 만물이 모두 브라만으로부터 나온다. '브라만'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으며,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공기도 아니며 공간도 아니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과 혀도 없다. 맛도 없고 냄새도 없고 촉감으로 느낄 수도 없다. 숨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그것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다. 무엇으로도 측정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또한 잡아먹히지도 않는다." 브라만은 우주 최고신이다.

'아트만'은 '호흡, 숨'이라는 뜻인데, '절대 변하지 않는 초월적인 자아'를 뜻한다. 육체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윤회해도 변하지 않는 영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트만'이다. 아트만은 우주의 본질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죽은 뒤에도 아트만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태어난다. 힌두교의 윤회 사상이다.

윤회 사상은 후에 '이승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할 때 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지배자의 지배 논리로 사용된다. <우파니샤드> 시대에 우주적 원리로서의 '브라만'과 개인적 원리로서의 '아트만'이 같다는 사상이 발생했다. 이른바 '범아일여, 범아일체' 사상이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 '나'라는 에고와 다른 '참 자아'의 발견

<우파니샤드>는 인간에게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나'라는 '에고'이며 다른 하나는 '참 자아'이다. '참 자아'가 진정한 자기라는 깨달음에 이르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욕망을 포기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불멸의 존재가 된다.

늘 함께 다니는 정다운 새 두 마리가 같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그 가운데 한 마리는 열매를 따 먹느라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아무 집착이 없이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친구를 초연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새가 '에고'이고,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새는 '참 자아'이다. <우파니샤드>에 여러 번 나오는 '에고'와 '참 자아'에 대한 유명한 비유다.

'요가'는 '마음과 감각을 제어하는 자기 절제 수행'이다. 요가 수행을 하면 생각의 흐름이 멎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감각기관의 활동이 멈추면서 평정심이 생긴다. 평정심이 생기면 가난한 자든, 부유한 자든, 예쁜 자든, 추한 자든, 무서운 자든, 만만한 자든, 기쁘든 슬프든, 모두 같은 마음을 갖게 된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욕망을 포기하면 죽을 존재가 불멸의 존재가 된다. 가슴을 얽어매고 있는 모든 매듭이 풀리면 죽을 존재가 불멸의 존재가 된다. 그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자제하라! 베풀라! 동정심을 가지라!" <우파니샤드> 가르침의 결론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불교도 <우파니샤드>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데, 올더스 헉슬리는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모든 종교적인 신앙의 원천이 되는 영원한 철학"이라고 말했다. <우파니샤드>는 노자 사상과도 매우 비슷하다.

<우파니샤드>에서 '브라만'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럼 뭐란 말인가? 이율배반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 어딘가에 인도철학과 힌두교, 또는 <우파니샤드>의 진리가 숨어있을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_물병자리_정창영 편역
바가바드 기타_물병자리_정창영 편역

바가바드 기타의 탄생과 배경

<바가바드 기타>는 '거룩한 분의 노래, 신의 노래'라는 뜻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우파니샤드>에서 많은 이야기를 끌어왔고, <베다>의 권위도 무시하지 않는다. <바가바드 기타>는 18장, 7백여 구절의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가바드 기타> 역시 성립연대와 저자가 정확하지 않다. 대체로 기원전 4, 5세기 무렵으로 추측하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아르주나의 질문에 대해 크리슈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아르주나는 판두 왕의 다섯 형제 중 능력이 가장 뛰어난 아들이다. <바가바드 기타>의 실질적 주인공이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의 마차를 모는 마부인데, 힌두교 3대 신 중의 하나인 '비슈누'의 화신이다. 그래서 부처님 별호 '법륜성왕'에서 말한 것처럼, 크리슈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마부는 아니다. 비유하기 쉽게 크리슈나를 '인도의 그리스도'라고도 부른다.

크리슈나 설화는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도 많이 닮았다. 시대를 따지면 오히려 예수를 '팔레스타인의 크리슈나'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드리타라슈트라는 쿠루족의 왕권 계승자였으나 장님인 관계로, 동생인 판두에게 왕권을 계승했다. 하지만 판두는 왕위에 오르고 나서 일찍 죽었다. 그 후 판두의 다섯 아들들과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 두료다나 간의 왕위쟁탈전이 일어나게 된다. 왕위를 둘러싸고 사촌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상징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 전쟁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볼 수도 있겠다.

아르주나는 전쟁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꼈다. 자신의 형제들과 연합해서, 사촌들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회의였다. 아르주나는 차라리 사촌 형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크리슈나의 가르침, 삶에 의무로 참여하라

사촌들과 전쟁을 앞두고 아르주나가 묻는다. "크리슈나여! 도대체 삶이 무엇이기에 이런 전쟁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크리슈나가 답한다. "아르주나여. 두려워하지 마라. 마음을 깨끗하게 지켜라. 영적인 수행의 길에서 흔들리지 마라. 대가를 바라지 말고 베풀어라. 감각의 욕구를 절제하라. 신실한 마음으로 신을 섬겨라. 경전을 탐구하여 진리를 깨달으라. 집착을 버리고, 포기에서 오는 즐거움을 누려라. 누구를 향해서든 분노하거나 해치지 마라. 모든 존재를 자비로움으로 대하라. 욕심을 부리지 말고 선을 행하라.

강인한 정신력과 인내심과 순결함을 키워라.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마라.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해라. 전쟁의 목적은 단지 왕권을 찬탈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맞서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너에게 부과된 의무(전쟁)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해야 하고, 그런 사명을 아르주나인 네가 가지고 있다."

아르주나가 계속 묻는다. "삶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행위에 따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탈해야 하는 것이 옳은 삶입니까?"

크리슈나는 말한다. "삶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의무로써 삶에 참여하라. 고통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삶에서 자신의 의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고민하라. 욕망을 내려놓고 행동하라! 욕망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 평정심을 가지고 자기의 역할을 실천하라.

행위의 결과를 기대하지 말고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라.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삶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행하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공동체와 세상의 질서를 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삶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의무로써 삶에 참여하라. 고통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크리슈나의 가르침, 행위에 집착하지 말라

크리슈나는 계속 말한다.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는 길을 가도록 하라. 이 길을 가려면 이기적인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는 자는 즉시 평화를 얻는다.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비로운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나' 또는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품지 않고, 소유에 집착하지 않으며, 고통과 기쁨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어떤 상황에나 만족하며, 자신을 제어하고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초연한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밝고 순수한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근심 걱정하지 않는 갈망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무엇을 즐거워하지도 않고 무엇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무엇을 애통해하거나 무엇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 무엇이 오고 가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오직 나에게만 마음을 향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원수와 친구를 동등하게 대하며, 존경과 멸시, 추위와 더위,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명예와 불명예에 초연한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무엇에 집착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만족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누가 칭찬하거나 비난해도 아무 말이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만족하는 사람, 집도 절도 없는 처지가 되어도 만족하는 사람, 그러면서 언제 어디서나 나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한다. 네 할 일은 오직 행동에만 있지 결코 그 결과에 있지 않다. 행동의 결과를 네 동기가 되게 하지 마라. 그러나 또 행동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결과가 좋고 나쁨을 동일하게 보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라."

간디의 삶으로 재해석된 바가바드 기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바가바드 기타>에 비하면 현대 문학은 보잘것없고 진부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바가바드 기타>를 말할 때 절대 간디를 빼놓으면 안 된다.

간디는 "의심이 나를 괴롭힐 때, 실망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볼 때, 그리고 곧 나타날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을 때, <바가바드 기타>의 책장을 넘기면 나를 위로하는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 속에서도 바로 미소 짓게 된다."라고 말했다.

간디의 삶은 바로 <바가바드 기타> 그 자체였다. 간디는 평생 <바가바드 기타>를 끼고 살았다. 간디의 삶은 <바가바드 기타>에 근거했다. 간디의 삶을 지탱했고 이끌어주었던 단 한 권의 책이 <바가바드 기타>였다.

간디의 삶과 사상의 핵심은 언뜻 모순돼 보이는 '비폭력과 투쟁'이었는데, 그게 바로 <바가바드 기타>의 핵심 사상이었다. 크리슈나는 "선이 시들어 죽었을 때는 신이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와서 선을 회복하기 위해 산다."고 말했는데, 간디야말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다녀간 신'이었던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비유와 상징이 매우 많고, 무려 3천 년 전의 경전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철학이다. 그러나 실제 실천은 쉽지 않다. 반드시 행동하라! 행동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라! 원수와 친구를 동등하게 대하라!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려 3천 년 전의 고전을 지금 읽는 이유는 우리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기 위함일 것이다. 고전을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우리 삶에서 실천할 때라야 비로소 고전을 읽는 정당한 의미가 생길 것이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상임대표, 국제민주연대 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서울문화재단 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상임대표, 국제민주연대 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서울문화재단 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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