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걷다 마주치는 보물들 ①

인천투데이=최석훈 시민기자|큰길에서 버스를 내려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어 좀 걸으면 5층 안 되는 연립주택들 사이로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나무 뒤로 주택들이 불상의 광배처럼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이면 도로가 지난다.

마실 가는 할머니가 걸어가고, 학교 파한 중학생이 자전거를 씽 달리고, 면발 불까 휘리릭 짜장면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나무에 기도하는 사람도 꽤 있나 보다. 나무를 둘러싼 울타리 저쪽에서 막걸리 냄새가 시큼하게 풍겨온다.

인천 서구 신현동 회화나무는 옹진, 강화를 빼면 인천 본토에 있는 천연기념물 두 나무 중 한 나무다. 그렇게 귀한 나무가 고목의 생육에 좋은, 쾌적한 공원이 아니라 주택 사이에 있다. 그만큼 천연기념물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이 사실이다.

회화나무는 이땅에 자생하는 나무가 아니다. 중국 원산으로 재배식물이다. 중국에서는 주나라 이래로 궁궐 밖에 3그루 심었는데, 우리로 치면 삼정승인 삼공(三公)이 천자에게 조회를 오면 얼굴을 회화나무를 향해 조아렸다고 한다.

이후 회화나무 세 그루인 삼괴(三槐)가 신하로서 가장 높은 지위인 삼공을 바로 상징하게 됐다. 그래서, 현실 정치에서 권력 얻기를 소망하는 사(士) 계층에서 많이 심게 됐고, 이후 학자의 나무라는 별명도 얻었다.

중국 원산으로 재배식물인 회화나무

인천 서구 신현동 회화나무.
인천 서구 신현동 회화나무.

한국도 중국의 그 풍속을 좇아 심었을 것이다. 그래서, 궁궐과 관아, 향교나 서원 등에 많이 남아 있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괴(槐)를 쓴다. 槐의 중국 발음은 후아이(huái). 회화나무의 다른 이름인 홰나무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느티나무를 가리키는 글자로 명확히 거(櫸)를 써 회화나무 괴(槐)와 구분한다. 그런데, 한국은 한자 槐를 느티나무 부르는 데도 썼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槐가 자주 등장하는데, 한국은 그 나무가 느티나무인지 회화나무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선조들은 혼동해 썼다. 그래서 충북 괴산(槐山)이 느티나무 때문에 붙은 지명인지 회화나무가 기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는 신현동 회화나무를 빼면 3건 11그루뿐이다. 그중 8그루는 창경궁에 있고, 창경궁 회화나무 군으로 지정돼 있다. 천연기념물 중 나이는 제일 어리다, 300~400년.

제일 어른이 당진 삼월리에 계시는데 700년, 다음이 함안 영동리 나무로 600년, 경주 육통리 나무가 400년이다. 신현동 회화나무는 500살이니 한국에서 3번째로 나이 많은 회화나무이다. 네 나무 모두 마을에서 당산나무로 모신다.

심긴 유래가 불확실한 추측 밖에 없는 신현동 회화나무

인천 서구 신현동 주택가 사이로 보이는 회화나무.
인천 서구 신현동 주택가 사이로 보이는 회화나무.

그런데 신현동 회화나무는 다른 세 나무와 달리 오래된 마을에 있지 않아서인지 심긴 유래가 불확실한 추측 밖에 없다. 현재의 위치에 회화나무 고목이 있는 까닭을 설명하기 어려워서 큰 홍수나 바닷물에 떠 내려와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지금 신현동 주택가를 보면 떠올리기 힘들겠지만, 1960년대까지도 신현동은 인천의 서쪽 해안이었다. 지금의 청라를 위시한 신현동 왼쪽 육지는 1970년부터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곳이다. 그러니 북쪽 가정동부터 신현동은 바닷가였다.

신현(新峴)이란 말은 새 고개란 뜻으로, 신현동 아래 갯말(원창동의 浦里)에 전조창(轉漕倉)을 짓고 세금으로 거둔 쌀인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반하기 위해 이곳에 새로 뚫은 고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지금은 나지막하지만, 신현동은 갯마을에서 서울로 가는 언덕배기였고, 회화나무도 바다를 굽어보며 서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궁궐은커녕 관아나 원 등의 건물을 상상할 수 없는 입지이지만, 회화나무를 심고 관리할 만한 공적 장소나 입신양명을 꿈꾸는 양반의 집에 있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회화나무의 꽃이 위쪽부터 먼저 피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고 한다.

음력 5월 28일, 마을 원로들이 회화나무 앞서 마을 제사

인천 서구 신현동 회화나무.
인천 서구 신현동 회화나무.

지금도 음력 5월 28일이면 마을 원로들이 회화나무 앞에서 마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나무 앞에 제단이 서 있고, ‘신현동우회’가 새겨져 있다. 사람들 곁에서 여전히 사랑받는 나무이다.

회화나무는 콩과 나무이다. 같은 과의 아까시나무와 잎의 생김새가 아주 비슷해 보인다. 잎자루의 양쪽에 여러 개의 작은 잎이 새의 깃 모양처럼 붙어 있는 깃꼴겹잎인 것은 똑같다.

하지만, 작은 잎의 끝이 아까시나무는 뭉툭하고 회화나무는 뾰족해 다르다. 나무 가득 피는 꽃도 멀리서 보면 비슷하다.

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끝까지 핀 총상꽃차례의 모습이 비슷하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봄에 피고, 회화나무는 한여름인 7~8월에 피니 간단히 구분할 수 있다.

꽃이 귀한 여름에 도심에서 만나는 회화나무 꽃은 참으로 싱그럽다. 비바람이라도 치면 꽃비로 흩날려 거리를 꽃으로 채운다. 신현동 회화나무 아래도 낙화가 가득하다. 한 가마는 나올 듯하다. 올해는 풍년이려나. 위쪽에서부터 꽃이 피었다.

*최석훈 시민기자는 다음카페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의 운영자입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