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걷다 마주치는 보물들 ③

인천투데이=최석훈 시민기자|모든 지식은 물이 흐르듯 위에서 아래로 전수된다. 어떤 식으로든 지식을 전해줄 선생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식물 공부도 도감이든, 고수나 학자든 제대로 그 이름과 생태를 알려줄 존재가 필요하다.

가까이에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어려우니 식물 공부 초심자는 대개 도감이며 인터넷 사이트를 훑어보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도감이 쌓이고, 인터넷 북마크도 넘쳐나고. 그러다가 확실한 보루를 만나게 되었다. 풀 쪽으로는 여왕벌(), 나무로는 낙은재(). 사이트는 풀베개(). 스마트폰 앱으로는 모야모가 있다.

부평 부개산 개활지를 가을에 온통 뒤덮는 풀이 있다. 꽃이 등골나물 식구랑 비슷하긴 한데, 골등골나물, 골등골나물, 향등골나물… 들의 도감 설명문을 펼치고 견줘 봐도 딱 들어맞는 등골이 없다.

만개한 좁은잎들골나풀 꽃. 부평 부개산.
만개한 좁은잎들골나풀 꽃. 부평 부개산.

이 등골나물은 기존 등골나물보다 잎의 너비가 두드러지게 작아 확연히 다르다. 그러다 모야모 인천 모임에서 활동하던 한 회원분에게 그 이름을 듣게 됐다.

60대 남성으로 몸이 좋지 않았는데 식물 공부에 빠져 지식도 쌓고 건강도 회복한 분이다. 그분도 저 등골나물을 보고 이름이 궁금해 곳곳에 물어도 해결하지 못해 애달다가 그곳 커뮤니티에서 한 전문가를 만나게 됐다.

미국에서 식물 공부를 해 박사 학위를 딴 그야말로 이쪽 전문가신데, 마침 공부하던 곳에 지천인 등골나물 종류라 바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학명 ‘Eupatorium altissimum L.’, 가칭 좁은잎등골나물(그 회원은 가는잎등골나물이라고 불렀으나, 이 잎의 특징은 다른 등골나물의 잎에 비해 지름이 짧거나 굵기가 잔 것이 아니라 너비가 작은 것이므로 ‘좁은잎’으로 붙이는 것이 타당하다).

아직 우리 학계에 보고되지도 않았고, 당연히 식물도감은커녕 국립수목원에서 운용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좁은잎등골나물은 북아메리카 자생식물이다. 북쪽으로는 캐나다 온타리오, 서쪽으로는 미국 중부인 네브래스카, 남쪽으로는 텍사스와 플로리다가 한계인 북아메리카 동부가 자생지이다. 미국에서 부르는 이름은 tall thoroughwort 또는 tall boneset로 직역하면 키큰등골나물이다.

좁은잎등골나물 자생지 분포도. 영국 큐 왕립식물원 Plants of the World Online.
좁은잎등골나물 자생지 분포도. 영국 큐 왕립식물원 Plants of the World Online.

그런데, 어쩌다 한반도 하고도 부평에 있는 인천가족공원에 살게 되었을까. 씨앗이 편서풍 타고 날아서. 바다를 둥둥 떠 건너서. 그럴 리가 없다.아마도 묘지 공사를 할 때 쓰는 복토용 토사나 지피식물 씨앗에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외국의 자생지 말고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그곳에만 서식하기 때문이다.

한때 서울의 모든 쓰레기를 감당하던 난지도가 있다. 지금은 매립지 전체가 공원이 됐다. 쓰레기 위에 엄청난 토사를 덮어 지금은 작은 산처럼 보인다.

그중 옛 제2매립지 자리에 있는 하늘공원에 야고라는 풀이 산다. 야고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자생하고, 중국 양쯔강 이남과 동남아시아 등 난대 지방에 서식하는 풀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하늘공원에 서식하다니 무슨 일일까.

매립할 때 쓴 토사나 거기에 심은 갈대가 제주도에서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야고는 갈대 뿌리에 기생하는 풀이라 그렇다. 식물의 자생지 이동이 이렇듯 인간에 의해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생겨날 수 있다.

황소개구리나 붉은귀거북, 중국꽃매미 따위의 갑자기 창궐한 외래생물들이 이 땅의 혹독한 사계절을 견디지 못하고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그런데, 그 기원이 누군가의 의도거나 우발적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좁은잎등골나물은 부평에 살고 있다.

열매에 갓털 달고 겨울나는 좁은잎등골나물.
열매에 갓털 달고 겨울나는 좁은잎등골나물.

10여년도 넘게 겨울도 나면서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이 땅의 식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곁에 사는 푸나무들이 모두 자생식물인 것은 아니잖은가.

여러나라의 사람들이 들어와 함께 어우러져 살듯이 이 땅에 들어와 다른 식물들과 어울려 살면 이미 그들을 외래식물 또는 귀화식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름도 어차피 가칭인 좁은잎등골나물보다 인천등골나물 또는 부평등골나물이나 부개등골나물로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첫 발견지 또는 보고지 이름을 식물 국명에 붙이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이 식물 국명에 들어가는 식물이 서울제비꽃, 서울김의털 등 5종 있고, 부산에 부산꼬리풀 등 3종, 대구에 대구사초 등 3종이 있는 반면, 인천에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인천잔대 1종이 있을 뿐이다.

오직 인천 부평 부개산 자락에서 늦여름과 가을을 화사하고 눈부신, 흰 꽃으로 수놓는 이 귀화식물의 씨앗을 채취해 도심 곳곳에 심고, 인천등골나물 혹은 부평등골나물로 이름 지어 시민과 함께하는 것은 어떨까. 관계자와 전문가의 대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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