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내분이 불러온 멸망, 왕건의 후삼국 통일로 이어져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88년 전인 936년 10월 1일,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삼국 통일을 완성했다.

후백제는 초기에 군사적으로 고려와 신라를 압도하며 우위를 점했다. 927년에는 신라의 경주를 침공해 경애왕을 폐위시키고 경순왕을 옹립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930년 고창전투(경북 안동)에서 고려군에 패배한 후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걸었다. 

개성에 위치한 고려 태조 왕건릉
개성에 위치한 고려 태조 왕건릉

견훤의 왕위 계승 문제로 불거진 내분

후백제의 급격한 몰락은 내부의 정치적 혼란에서 비롯됐다. 견훤이 넷째 아들인 금강을 총애해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장자인 신검이 불만을 품었다.

결국 935년, 신검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정변을 일으켜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금산사(전북 김제)에 유폐시켰다.

금산사에 유폐한 견훤은 3개월 만에 탈출해 고려 왕건에게 투항했다. 이어 견훤의 사위 박영규도 고려에 귀순하면서 후백제는 급격히 약화됐다.

936년 왕건은 일리천 전투(경북 구미)에서 후백제군을 크게 격파하고 황산(충남 논산)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으며 후삼국 통일에 마침표를 찍었다. 

완전한 삼국통일을 이루다

왕건의 후삼국 통일은 한반도에 새로운 통일 왕조를 수립한 역사적 사건이다. 고구려의 영토 회복을 지향하며 민족의 통합을 추구했고, 신라 귀족들을 포용하는 등 포용적인 정책을 펼쳤다. 아울러 발해의 유민까지 흡수하는 등 실질적인 민족 통일의 완성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려는 안정적인 국가 기반을 마련하고, 이후 약 500년간 지속되는 강력한 왕조 토대를 구축했다. 또한, 불교를 국교로 삼아 문화적 통합을 이뤘으며, 여진과 거란 등 유목 민족을 상대로 북방 정책을 강화해 영토를 확장하고 대외 관계를 강화했다.

이는 고려가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국사에서 중세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