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계획된 범죄, 운요호사건 발생
조선 해안 측량한다는 구실로 불법 침입

인천투데이 = 박길상 기자 | 149년 전 오늘, 1875년 9월 20일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와 영종도 침탈을 시작했다.

이날 일본군은 조선 해안을 측량한다는 구실을 앞세웠지만, 조선 정부에 미리 통보하거나 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 침입이었다.

운요호 모형( 출처 전쟁기념사업회 전쟁기념관)
운요호 모형( 출처 전쟁기념사업회 전쟁기념관)

운요호는 영국에서 도입한 최신 군함이었다. 대형 함포인 160mm와 140mm를 장착하고 1km 밖에서도 정확한 포격이 가능했다.

운요호, 대형 함포 장착한 영국제 최신 군함

먼저, 일본군은 담수 보급을 핑계로 작은 배로 갈아타고 강화 초지진에 접근했다. 초지진 조선 수병은 즉시 돌아가라며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일본군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초지진 포대는 일본군에 경고 포격을 했다.

다음 날인 21일 운요호 일본군은 최신식 함포로 초지진을 맹렬히 공격해, 파괴했다. 그러나 운요호는 승조원이 수십 명 단위인 작은 배라서 이들만으로 강화도를 점령하기는 어려웠다.

강화 초지진 공격하고, 영종도 상륙해 조선군 살해

운요호는 방어가 다소 허술한 영종도를 노려 공격했다. 승조원과 해병대원들로 편성된 일본 해군 육전대가 영종도에 기습 상륙했다.

이들은 조선 수군을 궤멸하고 영종진을 점령해 조선군의 대포 35문과 화승총 130여정 등 무수한 무기를 약탈했다. 또한, 무고한 주민을 살육하고 성에 불을 지른 뒤 도망갔다.

조선 수군의 피해는 전사 35명, 포로 16명이었다. 일본 해군은 단지 2명의 경상자만 나왔다. 9월 24일 운요호는 귀환길에 올라 나가사키항으로 돌아갔다.

일제, 운요호사건을 핑계로 강화도조약 강요

일제는 운요호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군대까지 파견했다. 일본은 조선 정부에 개항을 강요했다. 결국 1876년 2월 27일 조선과 일본 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을 체결했다.

강화도조약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국제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이었다. 이 조약이 일본제국주의 조선 침탈의 시발점이 됐다.

조약은 ‘조선은 부산 이외에 두 곳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인 통상을 허가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그 결과 1876년 부산항, 1880년 원산항, 1883년 인천항을 잇달아 강제 개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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