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책으로 세상 읽기. 24.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유재산 철폐와 공유경제로 평등한 세상 그려
현대 사회 문제 해결의 실마리 제시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함께 잘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함께 잘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우리 시대에 그런 세상이 가능하긴 한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은 매우 비관적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떠올랐다. 이상향, 그러나 이 세상에 없는 곳, 유토피아. 모어는 이상향을 어떻게 그렸나?

유토피아, 이상향을 꿈꾸다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쓴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섬나라 이름이기도 하다. 원래 제목은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한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대단히 훌륭한 소책자>다.

1권과 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1권은 모어가 포르투갈인 탐험가 라파엘을 만난 이야기, 2권은 라파엘이 다녀온 '유토피아'에 대해 토머스 모어가 듣고 소개하는 내용이다.

'유토피아'의 어원은 그리스어 '아니다, 없다'를 뜻하는 '우'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를 합친 말이다. '유토피아'는 '그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니, 역설적인 말이다. 다시 말하면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시기의 사람들이 꿈꿨던 '이상향'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토머스 모어의 시대와 삶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나라와 시기는 영국 절대 왕정 시기였다. 그 시대가 당연히 <유토피아>에 반영돼 있다. 영국은 밖으로는 프랑스와 백년 전쟁, 안으로는 내란에 가까운 장미전쟁으로 거의 무법천지였다. 거리에는 거지들이 넘쳐났다. 내란이 끝나고 절대 왕정 시대를 연 튜더왕조가 창건됐는데, 모어가 모신 왕이 그 유명한 헨리 8세였다.

토머스 모어는 1478년 영국 런던에서 법관이었던 존 모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모어도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 공부를 했고, 헨리 8세 즉위 후 런던시의 사법을 총괄하는 사법 집행관이 됐다. 정직하고 일 잘하는 관리로 명성을 얻었다. 후에 대법관까지 됐지만,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졌다.

왕비 캐서린과 이혼을 요청하는 헨리 8세의 서한에 모어는 서명을 거부했고, 재혼한 앤 불린의 왕비 대관식에도 불참했다. 결국 모어는 런던탑에 갇힌 후, 사형 당했다.

사형당하면서 그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에도 반대했고, 현재의 성공회, 즉 헨리 8세가 창설한 영국국교회도 반대했다. 1935년, 교황 비오 11세 때 시성됐다.

유토피아 | 토머스 모어 저 | 박문재 역 | 현대지성
유토피아 | 토머스 모어 저 | 박문재 역 | 현대지성

유토피아의 사회 구조와 제도

유토피아는 원래 대륙과 연결된 초승달 모양의 반도였다. 땅과 대륙을 연결하던 양쪽에 15마일 너비의 수로를 만들어 대륙과 연결을 끊고 인공적인 섬이 됐다. 암초들이 많아서 유토피아 사람들만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고, 적의 함대가 쳐들어와도 손쉽게 적을 막을 수 있다.

유토피아 섬에는 도시 54개가 있다. 모든 도시의 언어와 관습과 제도와 법률은 같다. 한 도시에는 6000가구 정도가 사는데, 한 가구는 10~16명의 가족으로 이뤄져 있다. 한 도시의 인구는 대략 30만명쯤 된다.

유토피아에는 왕이 없고, 상설 의회도 없다. 섬 전체의 일 처리는 일이 있을 때마다 각 도시에서 3명씩 파견해서 구성되는 국가회의에서 진행된다. 그밖에 중앙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직은 시민들이 선발한 학자 집단으로부터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기본적으로 30가구를 한 단위로 관리 한 명이 선출되는데, 이 관리가 '필라르코스'다. 10명의 필라르코스를 관리하는 사람을 '프로토필라르코스'라고 부른다. 도시에는 200명의 필라르코스로 구성된 의회가 있고, 여기서 시장이 선출된다. 시장은 독재한다는 의심을 받아 실각하지 않는 이상 평생 유지된다. 반면 다른 모든 관직은 한 사람이 오직 1년만 맡을 수 있다.

모든 집은 국가의 철저한 계획에 따라 공급된다. 집은 10년마다 추첨으로 새롭게 정한다. 도로변을 따라 집들이 세워져 있으며, 각각의 집에는 길거리로 통하는 정문이 있고, 정원으로 통하는 후문이 있다. 이 문을 통해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집보다 정원 꾸미기에 더 열심이다. 모든 집은 3층이며, 벽면은 석재 또는 벽돌로 이뤄져 있고 지붕은 평평한 형태에 일종의 슬레이트가 덮여 있다. 슬레이트는 저렴하지만 튼튼해서 불에 강하고 방수가 잘 돼 비바람을 잘 막는다.

집 보수와 수리는 신속하게 이뤄지며 집수리 담당자는 자신이 맡은 구역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길지 예측해서 예방 작업을 해놓는다. 그러다 보니 집수리에 최소한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데도 집의 수명은 아주 길다.

한 도시는 도시와 그 주변의 농촌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시민은 각자 직업을 갖고 일하면서 또한 번갈아 2년씩 농촌에서 일해야 한다. 해마다 한 농장에서 20명의 도시민이 2년 동안의 농촌 복무를 마치고 도시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도시에서 새로 온 20명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새로 온 도시민들은 그들보다 먼저 농촌에 와서 1년 동안 일을 해왔던 도시민들에게서 농사일을 배운다. 법으로 강제되는 농촌 복무는 2년으로 정해져 있지만, 농촌의 삶을 더 원하는 사람은 원하는 만큼 더 오래 머무르면서 농사일을 가르치고 노동을 수행한다. 모든 생산물은 도시 중앙에 있는 시장에 모이고, 물건 종류별로 각 상점에 보관된다.

시민들은 하루에 6시간 일한다. 나머지는 여가시간이다. 주로 자기 계발을 하거나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데 시간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시간에 책을 읽는다. 하루에 6시간만 일한다고 해서 생필품이 부족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일하며, 부자와 성직자들 역시 일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서는 연장자를 우대한다. 최고 연장자가 해당 가구를 책임지는 가장이 된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복종한다. 30가구를 단위로 관청에서 공동 식사를 하고 음식을 배급받는다. 집에서 식사하는 것은 금지돼 있지 않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아무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유토피아인들의 행복관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행복'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인간의 행복을 구성하는 것은 '인생을 즐기는 것', 곧 '쾌락'에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최선을 다해 보살핀다. 당연하지만 그들은 모든 쾌락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오직 선하고 바른 쾌락 속에만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쾌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해준 신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다른 사람의 삶에서 온갖 슬픔과 근심을 없애주는 것이다. 좋은 옷을 입는 것, 어리석은 명예욕, 헛된 신분 자랑, 보석을 좋아하는 것, 사냥 등은 천한 쾌락이라 멸시한다.

전쟁은 용병을 고용해 수행한다. 그들은 쓰고 남은 많은 생산물을 수출해서 막대한 금과 은을 비축해 두는데, 비축한 금과 은은 주로 용병을 고용할 때 사용한다. 그들은 금과 은을 돌만큼이나 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노예들에게 사용하는 쇠사슬을 금으로 만들거나, 하찮은 그릇들을 만드는 데 금과 은을 사용한다.

다이아몬드나 진주 같은 보석은 어린이들의 장난감으로 쓰인다. 이 덕분에 유토피아의 시민들은 귀금속이나 보석을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석들은 정부의 창고에 쌓아두었다가 주변국과의 무역에 쓴다.

라파엘은 말한다. "유토피아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고 혐오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신세 진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신세 질 일이 없으며, 어떤 점에서도 존경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단지 부자라는 이유로 하늘처럼 우러르고 공경하는 정신 나간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자가 아주 인색하고 탐욕스러워서 자기 집에 금화를 무수하게 쌓아놓고도 살아생전에 그들에게는 단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라파엘은 계속 말한다.

“보석을 눈으로 보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눈으로 보고도 그 보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면, 진짜 보석이 가짜 보석보다 그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눈먼 사람에게는 진짜 보석과 가짜 보석이 아무 차이가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어떤 합당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보고 즐거워하려고 계속 부를 축적해 나가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런 자들은 참된 쾌락을 누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된 쾌락을 진짜 쾌락으로 착각해서 즐거워하는 것입니까?”

“자기 돈을 잃지 않으려고 아예 땅속에 묻어두고 한 푼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보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런 자들은 그 돈을 다시는 꺼내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므로, 돈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땅에 묻었더라도 실제로는 그 돈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돈을 땅에 묻어버려, 주인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사람도 사용할 수 없게 됐는데 그 돈을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는다면, 달리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유토피아의 법과 종교

유토피아에서는 사회와 가족에 의한 감독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관청에서 공동 식사를 할 때 젊은이들이 앉은 식탁 주변을 나이 든 사람들의 식탁으로 둘러싼다. 교회에서도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사이에 앉게 한다. 그 나라에는 술집도 없고, 매춘도 없다. 은밀하게 숨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전혀 없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여행은 시장의 허가를 받으면 가능하지만, 어디를 가든 항상 하루 노동 시간은 채워야 한다. 그러면 다른 곳에 가도 식사가 제공된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혼전순결을 법으로 정해놓아 여자는 18세, 남자는 22세가 돼야 결혼할 수 있다.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를 맺은 것이 드러나면 남녀 불문하고 평생 결혼이 금지되는 처벌을 받는다. 그들이 엄격하게 혼전순결을 지키는 까닭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혼생활에 따르는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고를 때 독특한 관습이 있는데, 신랑 신부 후보자들은 명망 있는 사람들의 입회하에 자신의 발가벗은 몸을 상대에게 보인다. 평생을 같이할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감춤도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혼과 재혼은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이것은 결혼생활을 소중히 여기게 하기 위한 것이다.

유토피아 사회는 중범죄인들을 사형시키는 것보다 강제노역형을 선고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을 즉시 사형시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보다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날마다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강제노역이 중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법은 꼭 필요한 것만 제정하기 때문에 법률이 많지 않다. 따라서 변호사라는 직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 대중들도 법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재판의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서 변론한다. 법이 많으면 변호사가 법에 대한 지식을 악용해 진실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어 자신이 변호사였는데도 변호사를 불신하는 듯한 태도가 흥미 있다.

유토피아의 종교는 다양하지만, 영혼 불멸과 내세에서의 상벌에 관한 기본 교리를 믿는 것은 모두 같다. 한 도시에는 13개의 교회와 13명의 성직자만 있다. 전쟁이 나면 성직자는 군대와 함께 전쟁터로 나가, 병사들이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선택해 믿을 수 있고, 누구든지 평화로운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믿는 종교를 포교하는 일이 허용된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가 믿고 싶은 종교를 믿을 수 있긴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유일신을 믿는다. 사람이 죽을 때 영혼도 몸과 함께 소멸한다거나 우주와 만물은 맹목적인 우연에 지배된다고 말하는 유물론적 교리는 반대한다.

법외에는 두려워하는 것이 없고 죽은 후에는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어떻게든 온갖 수단을 동원해 교묘한 술책과 폭력으로 이 나라의 법을 피하거나 파괴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1516년 초판본에 실린 유토피아의 목판 지도로 나중에 이미지에 색을 입힌 것이다.(출처 나무위키)
1516년 초판본에 실린 유토피아의 목판 지도로 나중에 이미지에 색을 입힌 것이다.(출처 나무위키)

모어의 진보적 사상과 한계

이상 2권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모어의 사상은 하루 6시간 노동, 기본소득제, 지방자치제, 공유경제, 공공 주택, 사형제 완화, 비밀 투표, 종교의 자유, 남녀평등 교육 등등, 수백 년 전 소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다.

물론 지나친 금욕주의, 노예제 인정, 가부장제, 사유재산 철폐, 집단 노동 등, 시대적 한계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모어가 르네상스인 인문주의자로서 '이상주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건 확실하다.

특히 모어는 라파엘의 입을 통해 "도둑을 교수형에 처하는 대신 모두에게 약간의 생계 수단을 주는 게 낫습니다. 빈민을 도둑으로 만들고 나중엔 시체가 되게 하는 무시무시한 궁핍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려면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가 논의를 시작하고 있는 이른바 '기본소득제'다.

정의에 관한 논의도 재미있다. “귀족, 금세공인, 고리대금업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한다 해도 공공의 이익에 별 필요가 없는 일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그 대가로 사치스럽고 화려한 삶을 보장받습니다.”

“반면에 노동자, 마부, 목수, 농부 같은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실어나르는 노새 같은 짐승도 해내기 어려운 어렵고 힘든 일을 쉴 새 없이 하며 살아갑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없다면 어느 나라든 1년을 버티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고 극도로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무거운 짐을 실어나르는 짐승보다도 못한 비참한 인생입니다.”

“게다가, 짐승들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지만, 그들은 먹고살기 힘들고 장래도 보장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며 죽을힘을 다해 힘들게 일할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지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를 걱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매일 받는 임금으로는 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어, 매일 조금씩이라도 저축하며 노년을 대비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재화의 공평한 분배가 이뤄질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떤 명목으로든 개개인이 능력껏 재화를 긁어모으는 것이 허용된 곳에서는, 재화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극소수가 그 모든 재화를 나누어 갖게 되고, 나머지 대다수는 궁핍해지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런 나라에는 마땅히 운명이 바뀌었어야 할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탐욕스럽고 사악하며 사회에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는 쓸데없는 부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겸손하고 정직해서 자신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날마다 힘든 노동을 도맡아 하는 가난한 자들입니다.”

“사유재산이 완전히 폐지되지 않는 한, 재화가 공평하고 정의롭게 분배되는 것도 불가능하고, 인간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도 불가능함을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인류의 절대다수 그리고 많은 선량한 자는 빈곤과 중노동과 염려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억눌린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정의에 대한 논의가 절절하다.

유토피아가 현대에 주는 시사점

이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라파엘의 말은 상당수 내용이 약간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들려준 모든 것에 다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유토피아 공화국에서 시행되는 것 중에서 아주 많은 것이 우리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시행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써놓고도 너무 과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듯이 <유토피아>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이상향', '이상국가'에 대해 먼저 제시한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그 유명한 <국가론>에서 철학자가 통치하는 공화국을 이상 국가로 제시했다. 그는 '재산의 공유'가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토대라고 주장했는데, 플라톤이 시작한 이상국가 사상,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공동소유를 기본으로 하는 '이상국가' 사상은 모어를 거쳐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상임대표, 국제민주연대 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서울문화재단 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상임대표, 국제민주연대 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서울문화재단 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