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한 한·소 수교의 역사적 의미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 │ 오늘로부터 34년 전인 1990년 9월 30일, 대한민국과 러시아(당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는 수교를 하며 냉전 구도 속에서 새로운 외교 전환점을 맞았다.

이는 당시 노태우 정부가 주창한 북방정책과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 외교가 만나 이뤄낸 성과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다.

고르바초프 소련 초대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출처 외교부)
고르바초프 소련 초대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출처 외교부)

남북 관계와 국제 정세 변화 이끈 수교

한러수교에 앞서 1985년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면서 소련은 냉전 완화와 화해를 목표로 한 '신사고 외교'를 추진했다. 이는 대미 관계 개선, 대중 화해, 대일 관계 정상화 등으로 이어지며 동북아 지역에 평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한국 정부도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7·7 특별선언(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통해 북방정책을 주창하며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에 소련의 참가로 한·소 간 외교의 첫 물꼬가 텄다. 이후 양국은 영사처 설치 합의(1989년)와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관계를 빠르게 증진시켰고, 199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에서 수교 원칙을 확인했다.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에 기여

1990년 9월 30일, 제45차 유엔 총회에서 한국의 최호중 외무장관과 소련의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한·소 수교 협정에 조인했다.

이는 냉전 시대에 적대적 관계였던 두 나라의 화해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소 수교는 단순한 국교 수립을 넘어 한반도의 평화 구도 형성에 기여하며, 동북아시아의 안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교 이후 양국 간 정상외교는 활발하게 진행됐다. 1990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로 이뤄진 제2차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 정착 원칙을 선언했다.

이어 1991년 제주도에서 열린 제3차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의 유엔 가입을 향한 소련의 지지와 북한의 IAEA(국제원자력기구)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논의했다.

소련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최호중 외무장관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소련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최호중 외무장관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남북한 UN 동시가입에 기여

한·소 수교는 북한의 외교 노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소련이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북한은 국제적 고립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 대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으며, 이는 남북한의 UN 동시 가입으로 이어졌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남북한 UN 동시 가입 지지는 북한의 단일 의석 가입안을 철회시키고,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한소수교(현 한러수교)는 냉전 종식과 더불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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