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통상하기 위한 도굴 계획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56년 전인 1868년 5월 11일 독일의 상인이자 도굴꾼인 오페르트(1832~1903, 향년 70세)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1~1898, 향년 77세)의 아버지 남연군(1788~1836, 향년 47세)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오페르트 남연군 묘 도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오페르트는 독일 출신의 상인이다. 그는 1866년 3월과 8월 조선이 독일과 통상교섭을 거부하자, 당시 섭정을 하며 실권을 쥐고 있던 흥선대원군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해 유골을 인질 삼아 통상문제를 협상하려 했다.

충남 예산 덕산면에 위치한 남연군 묘 (사진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충남 예산 덕산면에 위치한 남연군 묘 (사진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남연군 묘의 위치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이다. 이곳은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명당이었다.

오페르트는 도굴단 100여명을 꾸려 남연군의 묘를 파헤친다면 흥선대원군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도굴 계획을 세웠다. 도굴단은 필리핀·중국·유럽·미국 등 여러 나라의 선원들로 구성됐다.

오페르트는 먼저 일본 나가사키에서 도굴용 도구를 구매한 다음 충남 홍성에 위치한 포구 구만포에 내려 인근 군청과 민가를 습격해 도굴에 쓸만한 도구를 약탈했다. 그뒤 남연군 묘에 도착해 도굴을 시도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명당에 위치한 아버지 남연군 묘를 보호하기 위해 입관 당시 석회로 관을 둘러 도굴을 방지했다. 이 때문에 오페르트는 도굴에 실패하고 날이 밝아와 철수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선 조정은 군관 100명을 투입해 도굴꾼들을 추적했으나 실패했고, 오페르트는 흥선대원군에게 한 편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엔 “남연군 묘를 파헤친 건 무례한 짓이지만, 백성을 해치는 것보단 나은 일이며 도굴에 성공해 관을 가지고 올 수 있었으나 지나친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오페르트는 편지에서 '조선의 문호개방'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침략할 뜻을 시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흥선대원군은 서양과 통상하는 문제를 두고 쇄국양이정책(서양 오랑캐와 통상하지 않는 것)과 천주교 탄압 등 부정적인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이후 1866년 10월 프랑스군이 천주교 신자와 프랑스 신부 등을 처형한 병인박해를 명분을 삼고 강화도를 침략하는 병인양요가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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