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부에 있던 영종진을 자연도로 옮겨
주민 생계와 군량 확보 위해 국영농장 폐지

인천투데이 = 박길상 기자 | 346년 전 오늘, 1678년(숙종4) 9월 27일, 자연도(지금의 영종도)에 있던 국영목장을 폐지하고 그곳의 소와 말을 용유·무의도로 옮겼다.

앞서 1653년(효종4)에 경기도 남양도호부(지금의 화성시)에 있던 영종진을 자연도로 옮겼다. 영종진을 옮긴 이후 입도 주민의 생계와 군량 확보를 위해 국영목장을 폐지한 것이다.

조선 초 남양부에 영종진을 처음 설치한 것은 태종∼세종 연간의 일로, 고려 말부터 극심해진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서였다.

A:영종도,  B:삼목도,  C:신불도,  D:용유도,  E:잠진도(출처 위키백과)
A:영종도,  B:삼목도,  C:신불도,  D:용유도,  E:잠진도(출처 위키백과)

유사시 왕의 피난길을 확보하기 위해 영종진 강화

그러나 병자호란 후 유사시 왕의 피난처인 강화도 방비와 인천월미도자연도~강화도에 도달하는 왕의 피난로를 확보하는 문제가 시급해졌다. 남양부에 있던 영종진을 인천도호부의 자연도로 옮긴 이유였다.

이는 청나라가 김포를 거쳐 강화도로 가는 길만 알고, 인천월미도자연도~강화도 길은 모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곧이어 월미도에 행궁을 설치했다. 유사시 왕이 인천 앞바다 수로를 이용해 강화도로 피난하기 위한 대비책이었다.

숙종은 국영목장을 폐지한 후 1684년(숙종10) 영종진을 첨사진(지휘관 종3품)으로 승격시키고 어영청에 편제했다. 1691년(숙종 17년)에는 영종진을 첨사진에서 방어영(지휘관 종2품)으로 승격시키고, 수군 337명을 배정했다.

영종진 조선 후기 한양과 강화도 방어의 핵심

영종진은 교동도와 함께 조선 후기 한양과 유사시 강화도를 방어하는 중심이었다. 영종진은 삼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연결되는 해로를 방비했고, 교동도는 황해도·평안도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바닷길을 방어했다.

그러나 영종진은 1875년(고종12) 8월 21일 일본 군함 운요호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함락돼 관아와 민가가 모두 소실되고 폐허로 변했다.

이후 영종진은 함포사격이 가능한 백운산 자락에 재건됐다. 그러나 인천이 개항되고 군사적 필요성이 사라져 1895년 갑오개혁 때 폐지했다.

한편, 영종도 앞선 이름인 자연도(紫燕島)는 '제비가 많은 섬'이라는 뜻이다. 영종진을 옮긴 후 섬의 명칭도 점차 영종도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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