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영국계 회사
서양 제품 수입과 선박, 보험, 은행 등 대리점업무 취급

인천투데이 = 박길상 기자 | 128년 전 오늘, 1896년 9월 28일 영국계 회사인 홈링거양행(홈링거상회)이 인천지점을 개설했다.

홈링거양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제조품 수입 회사였다. 인천과 부산, 중국 윈난성(마관), 라오닝성(대련)에 지점을 운영했는데, 인천지점은 영업부·선박부·은행부·보험부 4개 부서로 나눠 영업했다.

당시 홈링거양행 사옥. 사바찐이 설계했다.(출처 인천시민애집)
당시 홈링거양행 사옥. 사바찐이 설계했다.(출처 인천시민애집)

홈링거양행 인천지점 영업부는 직물, 양주, 담배, 기계, 양철, 유리, 시멘트 밀가루, 페인트 등 구미 각국의 제조품을 직수입했다. 선박부는 피오기선회사, 퍼시픽메일기선회사, 옥시덴탈앤드오리엔탈기선회사를 비롯해 영국·미국·프랑스 기선회사 10곳의 대리점업무를 취급했다.

보험부는 생명보험회사, 화재보험회사, 해상보험회사의 대리점업무를, 은행부는 홍콩상하이은행(HSBC), 노청은행(러시아인과 프랑스인들이 설립) 대리점업무를 각각 관장했다.

홈링거양행은 은행·보험 업무를 비롯해 온갖 잡화를 다룬, 오늘날로 치면 종합상사였다.

홈링거양행 사옥 러시아 건축설계사 사바찐이 설계

홈링거양행 인천지점은 개설 후 해안동 임시 사옥을 사용하다가, 1898년 8월에 사옥을 새로 완공하고 송학동으로 옮겼다. 건물은 러시아 출신 건축설계사 사바찐이 설계했다. 위치는 현 중구청 뒷길 '호텔 에티'가 있는 자리였다.

홈링거양행은 이 사옥에서 1910년경까지 영업했다. 이후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한 오락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33년엔 고토 렌페이란 일본인이 '조선매일신문사'를 차려 사무실 겸 주택으로 썼으며, 이후 '조선알미늄공업주식회사' 사옥으로 바뀐다.

광복 후에는 주한미국대사관 공보원 인천분원이, 1951년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지부 건물로 각각 사용했다. 1961년 화재로 소실돼 방치됐다가 테니스장을 만들었으며, 1990년 초 숙박업소가 들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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