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언의 100년 전 빵 이야기 ㉜

인천투데이=김다언 작가|부산 빵집은 경성을 제외하면 조선의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사진 조선시보 1918.9.5. 부산의 과자상안내)

조선시보 1918.9.5. 부산의 과자상안내.
조선시보 1918.9.5. 부산의 과자상안내.

인천 대불호텔, 경성 손탁호텔은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입맛에 맞는 커피와 빵을 포함 스테이크까지 제공했으나 대개는 특수한 신분과 상류층에 제한됐다.

빵 식문화 확산과 대중화는 빵집 증가, 제과회사 설립 등 산업화 속도와 관계가 있다. 경성에서는 1911년 10곳의 일본인 과자상 운영자가 모여 조합을 설립하겠다며 경기도청에 서류를 제출했다.(사진 매일신보 1911.12.6. 경성과자상조합)

매일신보 1911.12.6. 경성과자상조합.
매일신보 1911.12.6. 경성과자상조합.

현재의 자치단체와는 달리 경성의 행정체계는 경기도에 속해 있었다.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경성부의 단체장도 존재했으나 지금의 서울시장에 비하면 훨씬 권한이 제한적이었다.

경성 과자상조합 신청과 부산의 과자상 광고를 보면 1910년 이전부터 과자상이 존재했고 1910년대가 되면 부산의 과자상들이 단체광고를 했을 정도로 활발했다.

특히 부산 과자상 광고는 초기 과자 판매상의 다양한 특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자포, 상점, 제과점 등의 명칭은 소매점과 과자 제조공장 시설이 있는 공급처와 도소매점 등을 구분하고 있다.

상점의 경우 과자와 함께 차茶를 판다는 문구가 있는데, 전통차를 마실 때 떡이나 과자를 곁들이는 다식茶食 등 건강식이 함께 판매됐고 고객은 주로 일본인이었다.

특히 죽중제과점竹中製菓店은 교토 과자옥의 분공장分工場이라는 설명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다른 상점은 주소만 적혔으나 제과점 명칭 광고에만 분공장, 전화번호가 기록된 점에서 제과 및 도소매가 이뤄지는 곳을 의미한다.

상점은 다양한 품목 중 과자도 판매했고, 과자포는 다양한 과자류를 판매하는 전문점, 제과점은 과자 제조와 판매가 동시에 이뤄졌다.

빵을 포함한 과자 가격 결정과 구매방식은 어땠을까? 대체로 특별한 품목을 제외하고 종류와 상관없이 저울을 사용 무게로 가격이 결정됐다. 현대의 재래시장에서도 과자를 무게 단위로 판매하는 곳이 많다.

지금과는 과자 종류와 위생을 고려한 포장 등 차이도 있으나 무게의 단위가 특히 다르고 매우 생소한 용어도 사용됐다. 한 근, 이십 몸메 등의 단위를 들으면 나이에 따라 아는 용어가 있겠으나 특히 ‘몸메’라는 무게 단위는 매우 낯설다.

1941년 ‘애국빵’이라 부르던 판매용 빵의 기본 무게는 18~20 몸메였고 가격은 5전이다. 몸메는 현대에도 널리 쓰이는 금 무게의 단위 한 돈(3.75g)과 같다. 현대인이 낯설게 느끼는 만큼이나 일본과 조선의 무게, 거리 단위나 명칭은 서로 달랐을 것이다.

따라서 100년 전 한반도와 대만 그리고 중국영토 일부를 일본이 지배하면서 무역 등 상거래, 교통, 문화적 통일성은 꼭 필요했다.

당시 총독부는 거리와 무게의 단위를 1m, 1kg의 현대적 도량형으로 개선하는 미돌법米突法 실시를 추진했다. 미돌법은 미터 단위를 음역한 명칭이며 당시 신문을 보면 통상 메돌법으로 불렀다.(사진 매일신보 1927.5.19. 메돌법실행 기사)

매일신보 1927.5.19. 메돌법실행 기사.
매일신보 1927.5.19. 메돌법실행 기사.

기사의 내용은 메돌법 시행을 관에서 통제 가능한 공설시장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kg 단위와 당시 사용됐던 무게 단위를 환산한 표를 자세히 소개했다.

총독부의 정책적 의지와는 달리 당시 시골 장터에서는 화폐뿐 아니라 쌀 등 곡물과 물물교환 방식이 많아 미돌법 적용은 겉돌았고 탁상행정일 뿐이었다.

미돌법 적용은 자꾸만 미뤄졌고 1940년대 무게 단위조차 현대인은 전혀 알 수가 없는 몸메 등이 사용된 이유이다. 도량형 실시와 달리 정책적 결정이 중요했던 표준시간은 일본 동경 기준으로 조선(1912년)과 만주국(1937년)이 단일화됐다.

부산의 과자상 광고에서 보듯이 현재도 사용되는 용어인 제과점은 100년도 넘는 역사가 있는 용어이다. 제과, 제빵 및 판매가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현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1910년대 전기를 사용 과자와 빵을 만든다는 일은 현재로 치면 첨단산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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