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언의 100년 전 빵 이야기 ㉚

인천투데이=김다언 작가|경성역이 만들어지기 전 부산으로 가는 경부선 출발지는 남대문역으로 철도 이용객을 위해 1909년 차를 마시는 끽다점喫茶店이 들어섰다.

1913년 대구역에 끽다점이 들어서고 1918년 대전역에도 만들어진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빵집 등 신문물이 유입되면서 상업도 함께 발달했다.

매일신보 1919.8.18. 유성온천에서.
매일신보 1919.8.18. 유성온천에서.

1919년 매일신보를 보면 남대문역 출발 대전역까지 소요시간은 4시간 30분 정도였다. 유성온천이 목적지였던 일행은 낮 12시경 도착했으나 유성온천행 자동차는 4시에 있어서 기다릴 상황이었으나 성공한 사업가 덕택에 전용차를 얻어타고 계룡산을 둘러보며 유성온천에 갔다는 내용이다.(사진 매일신보 1919.8.18. 유성온천에서)

1915년 유성온천을 포함 대전을 홍보하기 위해 대전역에 접대소를 만들었고 차와 과자를 준비하며 안내책자를 비치했다는 기사도 있으니 유성온천은 대전의 오랜 명소이다.

경성일보 1927.01.1. 보래당과자포.
경성일보 1927.01.1. 보래당과자포.

대전역 앞의 여관, 식당, 자동차부, 주점, 과자점 등은 일찍부터 전국적인 광고에 열성이었다. 보래당과자포는 1924년부터 광고에 등장한다.(사진 경성일보 1927.01.1. 보래당과자포)

물론 다른 과자점 풍월당이라는 과자점 광고도 있다. 풍월당은 전국적으로 존재하는 인기 상호였는데 체인점은 아니었고 과자점뿐 아니라 다른 업종의 상호로도 많이 사용됐다. 특히 함경북도 함흥의 풍월당 규모가 상당했으며 외관 사진도 남아 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가게 주변으로 자전거가 많이 보인다. 당시에는 다양한 업종에서 자전거 배달이 일상화됐던 시절이다.(사진 경성일보 1934.11.29. 함흥 풍월당)

1910년대부터 우편물 자전거 배달이 전국적으로 이뤄졌다. 자전거 음식배달 또한 일상이었기 때문에 경성의 중심부 남대문 근처는 대혼잡을 이뤘고 급기야 일반인 자전거 통행을 낮 동안에는 금지령을 내렸을 정도이다.

경성일보 1934.11.29. 함흥 풍월당.
경성일보 1934.11.29. 함흥 풍월당.

특히 냉면으로 유명한 평양에는 냉면과 국수 배달이 많아 면麵배달부라는 명칭과 면麵배달부조합이 있을 정도였다. 이들의 급여는 하루에 60전을 받았고 자전거 배달의 경우 70전 임금을 요구하며 업주들과 교섭하는 기사도 있다.

1920년 매일신보 안성분국은 배달부 변경 사항을 신문에 고지를 했을 정도로 배달은 공공 및 상업적 영역에서 중요한 직군이다.(사진 공업신문 1948.5.27. 명동 냉면전문점 ‘냉면배달부’)

공업신문 1948.5.27. 명동 냉면전문점 ‘냉면배달부’
공업신문 1948.5.27. 명동 냉면전문점 ‘냉면배달부’

1915년 매일신보의 대전역 접대소에 차려진 다과 역시 당연히 과자포 소속 배달부가 전달했을 것이다. 여름철 수요가 많은 얼음은 아이스박스 형식의 냉장고에 넣어 음식을 보관하는 용도로 매일 각 가정에 배달됐다.

심지어 ‘아이스케익’으로 불렀던 막대기 얼음과자가 배달될 정도였다. ‘철가방’으로 상징화된 음식 배달문화나 ‘배달의 민족’ 광고는 이처럼 100년이 넘는 오랜 전통의 배달 서비스 역사에서 탄생했다.

1948년 평화일보 광고를 보면 대전의 제과소 여러 곳이 나란히 광고를 냈다.(사진 평화일보 1948.8.21. 제과소 광고)

사진에 나온 외에도 김종철, 강광식제과소 두 곳의 광고도 있다. 이처럼 대전역을 중심으로 100년 전부터 발달한 제과소가 자전거 배달뿐 아니라 신문 광고를 냈던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찐빵을 팔며 조그맣게 시작한 성심당이 대전을 넘어 전국적 명성을 얻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성장 스토리는 경이롭다.

평화일보 1948.8.21. 제과소 광고.
평화일보 1948.8.21. 제과소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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