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의 하인에서 천하인까지
조선 침략 실패로 끝난 그의 마지막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426년 전인 1598년 9월 18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년)가 사망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 풍신수길)는 본래 전국시대 일본 통일 기틀을 닦은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다. 그는 하급 무사 출신인 아버지 기노시타 야에몬의 아들로 태어나 1554년 오다 노부나가의 하인으로 일했다.

이때부터 그는 처세술과 내방 업무 등 성과로 오다 노부나가의 환심을 사 적극 중용받기 시작했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70년 가네가사키 전투, 1573년 오다니 성 전투 등 전국시대 평정을 위한 전투에서 활약하며 오다 노부나가의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 미츠히데의 반란으로 사망하자 미츠히데를 처단하고 오다 노부나가 뒤를 이어 일본 통일(1590년)을 완성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영정 (사진출처 KBS역사저널 그날)
도요토미 히데요시 영정 (사진출처 KBS역사저널 그날)

헛된 대륙 침략 야욕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눈 돌린 건 조선이었다. 그는 전국시대를 평정한 후 대륙침략 야욕을 품었다. 이에 조선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아 명나라를 정벌하고자 정명가도(征明假道), 즉 '명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명분으로 조선 침략을 감행했다.

전국시대를 거친 일본군은 수많은 전장에서 전투를 치른 경험을 보유한 숙련된 군인들이었다. 반면 조선군은 세종대왕 즉위 시절, 북방 지역 군사 요충지인 4군 6진을 개척한 이후 큰 전투 없이 비교적 평화 시기를 보내 일본군 군사력에 비해 크게 열세였다.

이에 조선 강토는 쑥대밭이 됐고 많은 조선인이 유린당했다. 그러나 일본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 9월 18일 병세 악화로 사망하자 일본군 전군이 철수하며 7년간 전쟁은 끝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이후 다이묘(영주)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권을 잡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은 막을 내렸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극 중 인조(배우 박해일)가 삼궤구고두례를 하는 장면 (사진제공 영화 남한산성)
영화 남한산성에서 극 중 인조(배우 박해일)가 삼궤구고두례를 하는 장면 (사진제공 영화 남한산성)

동북아 정세를 바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아울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은 동북아시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명나라가 조선을 돕는 사이 만주지역에선 여진족이 크게 성장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 파병으로 국방력이 약화돼 후금을 통제할 수 없었고 이에 후금의 청나라가 들어서며 중국 왕조를 교체했다.

조선 역시 '재조지은(再造之恩, 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을 명분으로 청나라와 적대하다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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