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청천 장군의 한국독립군, 중국 길림자위군과 연합작전 전개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92년 전인 1932년 9월 19일 한국독립군을 이끌던 지청천(1888~1957년)이 중국 항일의용군 길림자위군과 연합해 만주 쌍성보에서 승리를 거뒀다.

쌍성보 전투는 한국독립군과 중국 길림자위군이 연합해 전개한 무장 독립운동으로 1932년 9월 19일 1차 전투와 같은 해 11월 17일 2차 전투로 나뉜다. 1차 전투에선 승리했으나 2차 전투에선 일제 화력에 밀려 패전하고 말았다.

쌍성보 전투 당시 한국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 그는 훗날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한다. (사진출처 공훈전자사료관)
쌍성보 전투 당시 한국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 그는 훗날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한다. (사진출처 공훈전자사료관)

당시 일제는 만주를 병참기지화하고자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만주 하얼빈 인근에 위치한 쌍성보는 만주 보급품들이 모이던 요충지였고 일제 만주 주력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이에 한국독립군과 중국 길림자위군은 일제 만주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한중 연합군을 창설해 작전을 전개했다.

지청천 장군이 이끌던 한국독립군 규모는 500명이었고 가오펑린이 이끌던 길림자위군은 약 3만 명에 달했다. 쌍성보 주둔 일제 군사는 약 3000명이었다.

한중 연합군은 쌍성보 인근을 둘러싸고 매복한 뒤 기습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이후 야간에 작전을 실행해 일제 병력을 기습했고 많은 군수물자와 일제 병력 약 2000여 명을 생포했다.

그러나 일제가 다시 반격해 쌍성보를 다시 내줬고 한중연합군은 같은 해 11월 17일 2차 전투를 전개했으나 압도적인 일제 화력에 밀려 고전하다 끝내 패전하고 말았다.

쌍성보 전투는 비록 2차 전투에서 패전했으나 1차 전투에서 일제 만주군 요충지인 쌍성보를 점령하고 포로를 생포하는 등 큰 피해를 줬다.

또 중국과 연합작전으로 한중 양민족의 항일투쟁 공동전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쳐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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