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우크라의 눈물, 그리고 푸틴 영혼의 심령술사
[백병훈 칼럼] 우크라의 눈물, 그리고 푸틴 영혼의 심령술사
  • 백병훈
  • 승인 2022.06.2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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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입지조건이 러시아의 푸틴을 전쟁의 광풍으로 몰고 갔을까? 아직도 그 옛날, 대러시아주의의 빛바랜 영광을 못 잊어서는 아닐까?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기제는 무엇일까?

우크라의 눈물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다. 육지 국경선 길이는 19,917km, 해안선 길이는 37,653km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900km에 달한다. 이 광대한 영토는 러시아 힘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군사적 취약요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경선을 위협하는 외부세력을 잠재적 적대세력으로 본다.
우크라는 러시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를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슬라브 민족의 땅으로 보아 하나의 러시아 공동체로 간주한다. 그러나 2014년 ‘마이단혁명’이후 우크라가 등지고 떠날 것을 우려한다. 푸틴은 우크라를 침공하기 직전, 우크라 집권세력을 극단적 민족주의자와 신나치로 규정하고 2차대전 당시 대조국전쟁의 추억을 불러내 국민적 지지와 공감을 유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를 침공했다. 푸틴에게 우크라 침공은 ‘유라시아주의’의 실천과정이다. 당초 유라시아주의는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권역을 하나로 묶으려는 정치적 이념이자 러시아의 출구를 아시아에서 찾는다는 지정학적 전략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와 결합한 유라시아주의가 팽창주의적 패권주의로 모습을 바꾸자 우크라는 ‘신유라시아주의’의 이름으로 러시아가 극복해야 할 현실적 대상이 됐다. 이 중심에 블라드미르 푸틴이 있었고, 우크라의 눈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리정치학적으로 취약한 러시아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국가방어에 취약한 구조다. 러시아의 주요 도시와 전략거점을 외부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지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침략세력의 긴 병참선과 병력의 노출은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80만 대군으로, 히틀러는 최정예 400만 병력으로 러시아를 유린하고자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미래에도 러시아는 선(線)으로 점(点)을 타격할 수밖에 없는 방비가 불리한 지정학적 숙명의 나라이다. 이런 그들에게 러시아의 생명줄과도 같은 선인 국경선이 도전받을 수 있는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러시아를 ‘남’으로 생각하는 우크라가 국가생존 차원에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는 시도였다. 가뜩이나 소련 붕괴이후 ‘나토의 동진(東進)’은 러시아를 긴장시켜왔던 터이다. 러시아는 우크라를 역사적 연고를 내세워 ‘우리’라는 존재로 생각하지만, 우크라 국경으로부터 모스크바까지의 직선거리는 500km에 불과하다. 광활한 대평야의 러시아 방어는 쉽지 않다. 결국 그들은 우크라에 대해 군사행동을 수반하는 신유라시아주의 처방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푸틴과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두긴의 사상(思想体系)에 자신을 팔았던 것이다.

푸틴 영혼의 제조업자, 알렉산드르 두긴

1962년 군사가정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르 두긴(Alexandr Dugin)은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극우보수주의 운동가이자 파시스트 철학자이다. 파시즘의 동업자였던 그는 새로운 러시아제국을 옹호하면서 서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신유라시아제국’의 기초를 이론화했다. 러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의 육지세력이 단결하여 서방 자유주의 국가들의 해양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 이론의 핵심이다. 그는 푸틴 등장 직후 ‘제4의 정치이론’을 제시했다. 서구에서 탄생한 자유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가족, 마을, 공동체, 종교, 생태주의 등 서구의 3대이론이 폐기처분했던 전통적 가치의 복원을 주창하기도 했다. 한마디로‘문명연합’을 통한 반자본, 반자유, 반개인주의에 대한 일대 출격이었다. 그의 저서 ‘지정학의 기초: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는 러시아 군, 경찰, 외교정책 엘리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서방의 대서양주의가 유라시아에서 영향력을 상실할 것을 예상하여 합병⸱동맹을 통한 러시아 영향력의 재건을 역설했다. 그리고 러시아인의 세계지배를 위한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이 책은 단언했다. 이처럼 그의 사상과 이론은 푸틴정치의 마중물이 되었고 크렘린 정책의 토대가 됐다. 그래서인지 두긴은 ‘러시아 정신’이 ‘러시아의 봄’이라고 여기는 분리주의 투쟁을 선동해댔으며, 러시아와 우크라 사이의 전쟁 불가피론과 돈바스전쟁 개입론을 푸틴에게 신호했다. 푸틴은 그의 손짓에 화답했다. 그는 푸틴의 한 사람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러시아 정치에 조용히, 그러나 심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는 푸틴이념의 설계자이자 푸틴정치의 복음 전도사였다. “러시아는 위대 할 것이며, 러시아가 전부다.”라는 그의 말에서 국수주의(國粹主義)적 사상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푸틴을 이해하려면 먼저 두긴의 사유(思惟)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의 생각이 돈바스 전쟁,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 침공에 끼친 영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설적으로 이처럼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인 두긴에게 우크라 전쟁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끌 역사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르 두긴, 그는 러시아 역사상 제2의 라스푸틴이자 푸틴 영혼의 제조업자이며 악령이 깃든 심령술사는 아닐까?

백병훈 약력

건국대학교 비교정치학 박사 프라임경제 신문 주필⸱사장 민족사학 진산대학 부총장(추진위) 국가연구원 원장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정치심리공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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