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선이 푸른 하늘에 떠 있다라고 말하려다가 북에서 날린 것을 깨닫고왠지 아름답다고 말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아름다움은 절대적이지 않다--------------------[메모] 지난 10월 4일 아침 서울 남산 공원에서 찍었다. 푸른 가을 하늘에 십수 개의 하얀 풍선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두 풍선 사이에 ‘오물’ 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다시 올려다본 하늘, 터진 봉지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1-하루재산은 늘 그곳에 있다때가 되면 단풍이 찾아오듯우리는 산으로 간다 2-암벽등반산은 때로 절벽이다산을 오르는 건자신의 벽을 오르는 일이다 3-인수봉정상에 오르면 굽어본다올라온 길과 내려갈 세상산을 오른다는 건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4-백운대북한산 백운대 836m깃발이 펄럭인다마음 속에도 나부낀다---------------------------[메모] 지난 10월 12일 북한산에 올랐다. 맑고 밝은 날씨에 등산객도 등반객도 많았다. 높든 낮든 산을 오른다는 건 언제나 자신을 오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치 않으셨겠으나

세로로 열리고세로로 닫힌다 세상을 향한고양이 마음--------------------[메모] 어떤 연구에 따르면 빛이 많아질 때 세로로 축소하는 고양이와 뱀 등의 눈동자는 근거리 사냥감 주시에 유리하고, 가로로 축소하는 양과 염소 등의 눈동자는 원거리 포식자 주시에 유리하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달 한남대교 북단 쪽 한강 산책로에서 어느 캣맘을 기다리는 얌전한 고양이 모습이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인천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열렸는가닫혔는가 세상을 향한당신의 마음---------------------------------[메모] 지난 8월에 들렀던 강릉 선교장 한옥의 창문이다. 두 겹의 창 중 외창은 열고 내창은 닫았다. 비단 창문만 그러하랴. 타인을 향한 세상을 향한 마음의 창은 또 얼마나 많은 겹을 가지고 있는가.[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인천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2023년 디카시집 [꽃 트럭] 출간

불과 물이 만나고빛과 어둠이 만난다밝아서 빛나고어두워서 빛난다 저 아름다운 혼례---------------------------------[메모] 추석 연휴였던 지난 9월 16일 저녁 강릉 등축제가 열리는 경포호에서 찍었다. 불과 물이 만난다. 불이 물을 말리지 않고 물이 불을 꺼뜨리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만난다. 빛이 어둠을 지우지 않고 어둠이 빛을 가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만남이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인천대 기초교

바다의 보석인가파도의 눈물인가햇살의 함성인가고래의 비늘인가 저것은 무엇인가---------------------------------[메모] 지난 6월 16일 아침 동해 강릉 경포 앞바다에서 담은 윤슬이다. 저 아련하고 아늑하고 한없는 반짝임… 두 해 전 남해 여수의 향일암에서도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었다. 윤슬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그 반짝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인천대

연잎이 햇살을 받는다연밥이 햇살을 받는다저마다 햇살을 받는다연못이 햇살을 받는다세상이 햇살로 환하다---------------------------------[메모] 지난 8월 18일 강릉 경포호 옆 ‘경포가시연습지’에서 찍었다. 연꽃의 전성기를 기대하면 들렀으나 대부분 지고 남은 연꽃은 듬성듬성했다. 대신 반겨준 것은 넓은 연잎과 익어가는 연밥들과 그 위로 내리는 햇살이었다. 뜨거웠을 햇살이 새삼 따사롭게 느껴진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저 큰 솥으로 얼마나 많은 밥을 지었을까저 큰 솥으로 얼마나 많은 국을 끓였을까 지금도 어디선가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는데지금도 어디선가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데 우리는 저마다 얼마나 큰 솥을 가지고 있는 걸까---------------------------------[메모] 고려 태조가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창건한 개태사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있다. 지난 8월 25일 벌초한 후에 들렀다. 연산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던 곳이기도 하다. 지름이 3미터 정도인 저 솥이 대홍수에 떠내려와 한동안 연산공원에 전시되었을 때 초등학교 친구들

꽃과 나무 스무 장해와 달 열세 장산과 바다 열두 장돌과 벽 여덟 장 풍경으로 엮은 디카시 퍼즐---------------------------------[메모] 디카시 연재 1년을 돌아보았다. 51편의 디카시 원본 사진 폴더에 저장된 60장의 사진 스크린샷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꽃잎에서 둥근 태양까지 담겼다. 1년간 디카시 퍼즐을 엮고 보니 모두 비인간 풍경들이다. 사람의 표정은 언제쯤 담을 수 있을까.[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

맑고 밝은 한 떨기 꽃을 봅니다진흙 바닥에 내린 뿌리를 봅니다잦은 바람 견뎌낸 꽃대를 봅니다묵묵히 밀어 올린 연잎을 봅니다 불굴의 한 생애를 바라봅니다---------------------------------[메모] 지난 8월 11일 강릉 선교장 활래정(活來亭) 연못에서 찍었다. 폭염과 열대야로 심신이 지쳐가는 한여름에 만나는 연꽃은 범접하기 어려운 고결함을 지녔다. 예쁘지 않은 꽃이 있으랴만, 연꽃은 자못 경이롭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언젠가 무너지더라도 소망은 끝없다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사랑은 뜨겁다언젠가 끝날지라도 삶은 무던하다 찰라의 돌탑을 감싸고 도는천년의 물, 바람, 하늘---------------------------------[메모] 만해축전 참가 후 들른 백담사 앞 계곡이다. 이십여 년 전 기억 속의 자못 웅장했던 돌탑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수백 기의 돌탑들이 세워져 있었다. 수많은 나그네들이 쌓고 무너졌을 찰라의 돌탑들을 떠올리며 썼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새벽부터 저녁까지 피었습니다칠월부터 시월까지 피었습니다삼천리 금수강산에 피었습니다무궁화꽃에는 이념이 없습니다---------------------------------[메모] 무궁화 철이다. 무궁화꽃은 새벽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고 한다. 칠월에서 시월까지 한 그루에서 2~3천 개의 꽃이 피었다 진다고 한다. 지난달 말,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옆에서 찍었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인천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2023년

백두산 가는 길1-북파무엇이 저들을 이곳에 오게 하였는가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가 백두산 가는 길2-두메양귀비해발 팔천 척 바위 틈에서저 여린 꽃들이 피어나는 힘은 무엇인가 백두산 가는 길3-백두산 옥벽7천만 년 전백악기의 기억을 간직한주상절리의 절벽무엇을 역사하는가 백두산 가는 길4-천지동서 길이 3500미터남북 길이 4500미터최대 수심 384미터 무엇을 품고 있기에저리도 넓고 깊은가 백두산 가는 길5-장백폭포북방의 모든 폭포가 얼어도백두산에 걸린 저 두 필의 비단은결코 얼지 않는다고 한다 천지(天池)서 내린 물이천지(天地

저 뜨거운 가슴에도차가운 구석이 있다니 저 불타는 마음에도시리운 구석이 있다니 기억하라, 모오든 밝음 속의 어둠을---------------------------------[메모] 지난 월요일(7.15.) 아침 5시 47분, 백두산 가는 길에 이틀간 묵었던 중국 연길시 금수학호텔 부근에서 캐논 줌 카메라로 당겨 찍었다. 옅은 구름이 필터 역할을 했다. 태양 흑점은 주변보다 덜 뜨거운 영역이지만 지구의 가장 뜨거운 불보다 뜨겁다고 한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

무엇을 보는가무엇을 느끼는가무엇을 생각하는가무엇을 상상하는가 그것이 당신의 우주다----------------------------------------[메모] 1929년에 발표된 르네 마그리트의 를 흉내 냈다.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의 힘이 더 세다. 역사는 신화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것이 내가 신화를 애정하는 이유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인천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여명의 붉은 노을이 퍼지는잠든 새벽의 도시여린 그믐달이 내려다본다 어디선가 잠들지 못한 누군가저 달을 올려다보리라----------------------------------------[메모] 지난 6월 4일(음력 4월 28일) 새벽 5시, 양화대교 위에서 찍었다. 멀리 남산의 서울타워가 보인다. 고즈넉한 새벽 어디선가 누군가 저 달을 함께 바라보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졌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인천대 기초교육

빠져나간 자리가 더 넓다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크다 네가 떠난 순간우주는 텅 빈다----------------------------------------[메모] 예쁜 감꽃으로 피어나 알찬 감으로 커가다가 어떤 바람이 불어와 송두리째 떨어졌다. 지난 단오 무렵 한 가족의 나무에서 그렇게 떠나간, 아끼는 후배가 자랑스러워하던 큰딸을 떠올리며 쓴다. 내 어찌 그 참척의 슬픔을 어루만질 수 있으랴. 아아.[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누구의 얼굴인가어디를 비추는가무엇을 밝히는가누구의 마음인가----------------------------------------[메모] 오늘은 하지. 오월 보름달이 하지의 새벽에 달무리와 함께 떴다. 시조시인 이영도의 단시조 를 읽고 나니 세 해 전 하늘로 가신 어머님 생각이 간절했다. 아아 마른 이 땅에 단비라도 내려주셨으면.[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현재 인천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2023년 디카시집 [꽃 트럭] 출간

밤에 피어 밤꽃인가밤나무에 피어 밤꽃인가밤에도 밤나무 낮에도 밤나무밤에도 밤꽃 낮에도 밤꽃밤에도 낮에도 그윽한 향기----------------------------------------[메모] 우거가 있는 후암동, 소월길로 오르는 데크길에서 만났다. 그 향이 독특하여 옛날에는 밤꽃이 필 때 부녀자들은 외출을 삼가고 과부는 근신했다고 한다.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의젓한 밤나무, 가을에 밤톨이나 줍게 될까?[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

견고한 화강암 계단 위일사불란한 장례 행장모든 죽음은 장엄하다----------------------------------------[메모] 서울 남산 공원 계단에서 만난 지렁이 장례식. 신화학자 조현설 교수가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에 소개한 니브히 족의 ‘곰 사냥’이 떠올랐다. 사할린 지역에 사는 니브히 족은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곰의 몸을 세심하게 분리하여 살은 함께 나누고, 뼈는 따로 모아 장례를 지낸다”고 한다.[이태희 저자 약력]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2001년 시집 [오래 익은 사랑] 출간.2017년 [시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