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철학의 빈곤’을 탓하지 말라
[백병훈 칼럼] ‘철학의 빈곤’을 탓하지 말라
  • 백병훈
  • 승인 2022.07.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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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대통령 지지율을 놓고 말들이 많다. 20대 대선에서 0.73% 차이로 정권교체는 이루어졌다. 그리고 두달만에 다시 물었다.“대통령선거를 다시 한다면 누구를 찍겠는가”라는 질문에 이재명 후보 50.3%, 윤석열 후보 35.3%가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지금 대통령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실망과 우려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날의 국민 명령

대통령으로 달려 온 2달은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2달은 향후 5년의 세월에 대한 전주곡일 수도 있다. 그날, 국민의 명령은 젊은이들이 말하는 ‘벌레먹은 사회’나, 혹은 어느 진보진영 대원로 사상가가 규정했던‘악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 정상적인 나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새로운 권력의 존재감과 감동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혹여 국민을 이기려는 오만함은 없었는지, 국민을 하찮게 보는 독단적 태도는 없었는지, 공정과 상식의 약속을 깨지는 않았는지, 소통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직의 권위를 스스로 해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권력은 형식이 유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23년 전, 당시 자민련 총재였던 박태준 회장은 국회대표연설에서 “오만해지면 그 어떤 비판도 비난으로 들리고, 독선에 빠지면 그 어떤 잘못도 소신으로 착각하게 된다”고 정치권을 향해 충고했다. 만고의 진리다. 더 늦기 전에 더 낮추고, 말을 아껴라. 그래야 더 커 보이고 더 높아 보인다. 그런데도 새로운 권력이 무능과 위선으로 비쳐지면, 이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망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증오로 번져 정치냉소주의가 정치허무주의로까지 발전한다면 국민적 허탈감과 좌절감은 어떠하겠는가? 국민이 정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정치가 국민을 버렸다는 준엄한 비판이 뒤따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되지 못하는 것도 공통의 증오는 가능케 한다”고 후대 사람들을 위해 미리 경고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철학의 빈곤인가?

대중은 정치세력에 의해 정치화된다. 그리고 정치화된 대중은 역사를 바꾼다. 이러한 대중에게 새로운 권력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대중은 등을 돌리고 보냈던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바로 그것을 결정하고 규율하는 것이 바로 ‘국정철학’의 문제이고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정철학은 화폭에 그릴 원대한 국가디자인의 영혼이고, 영혼을 담은 국정철학은 ‘시대정신’을 녹인 가치를 담아 화폭을 채워가야 한다. 이 과정이 국정(國政)이다. 세계대공황 시절, 참담한 절망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 그리고 성장과 희망의 손짓을 세상을 향해 내 놓았던 존⸱스타인백. 그는 그의 작품 ‘분노의 포도’에서 시대정신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암울한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삶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문학사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처럼 시대정신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추동력이다. 정권담당 세력이 이를 읽어내지 못하면 국정은 이정표 없는 빈 시골길을 내달릴 것이다. 권력 내부에서는 노선과 가치관의 충돌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부의 균열은 권력암투와 권력투쟁의 길로 간다. 이런 조건에서는 대통령의 모습도, 정치발전도, 국가발전도, 국민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가치관의 빈곤, 국정철학의 빈곤, 통치철학의 빈곤이 초래할 자화상이다. 몽테뉴의 말처럼 어디로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국민들은 새로운 권력이 추구하려는 담백한 가치관과 세계관이 무엇인지 보고 싶어 한다. 그것을 보지 못한 대중은 정치적 신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다.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유권자이고 대중이다. 민심이 떠난 배는 좌초된다. 철학과 가치관의 빈곤 조건에서는 민심도 떠나고 새로운 권력에 대한 기대와 참고 기다려주는 인내심도 유보된다. 어떤 기연(奇緣)에 의해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철학의 빈곤’을 탓하지 말라. 인간은 사유(思惟)하는 동물이다. 사유의 인간적 세계관의 표현이 바로 철학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지혜가 모자라면 초야에 묻힌 인재들의 지혜를 모아라. 그리고 버릴 것은 버려라.‘버림의 미학’이다. 프랑스의 위대한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이렇게 절규했었다. “주여! 나를 친구들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적들은 나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나이다” 이 시기에 딱 와 닿는 말이다. 잘못 뽑았다고 서러워 마라. 시간은 남아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태극기 휘날리는 판옥선 12척이 남아 있다.

백병훈 약력

건국대학교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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