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의 덫, 다수결 만병통치약
협치와 당론의 자기모순
역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다수결의 문제로부터 파생되는 협치(協治)와 당론(黨論)이다. 다수당의 머릿수 밀어붙이기 속에서“협치”가 가능하겠는가? 여야 정파가 마지못해 국민의 눈치를 보며 협치를 말하지만 이 또한 빛 좋은 개살구다. 주고받기식의 옹색한 정치적 표현이 협치다. 그런데, 인계철선이 끊어지면 국민 기만, 민의 우롱이라는 분노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인계철선은 늘 국민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진정 협치를 협치답게 승화시키려면 강압적“당론채택”이라는 멍애를 벗겨내야 한다. 당론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해방시켜야 나라가 산다. 정당이 당의 노선을 정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과 당론을 강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당론이라는 명분으로 각자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국정의사결정 권한이 거부된다면 이는 당내독재다. 반독재를 향한 길고 길었던 민주의 여망이 민주의 전도사 자신들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을 위한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자살로 가는 지름길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회 본회의 투표 시 강제와 부당한 압력이 없는 의사형성과정으로서의 투표, 즉“자유선거의 원칙”에 따른 투표를 해야 한다. 이것이 보통, 비밀, 평등, 직접선거에 이은‘선거 5대원칙’이다.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는 의원 개개인의 찬, 반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 안건에 대한 찬, 반, 기권, 무효의 집계된 총 숫자를 모아 의장이 선포하면 된다. 한국대의민주주의 정치발전의 여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이제 ‘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훔치는 국회파행의 위선과 자기기만을 그만두어야 한다. 위선과 자기기만으로는 의회정치가 꽃 피울 수 없다는 통찰을 양심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독일 제3제국 나치당의 천재적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 그는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원인을 찾아 나섰다. 격동기 독일에서 국민들은 독일 의회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주류 정당들을 혐오하고 냉소했다. 마침내 그는 문제의 출발점을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한계에서 찾았다. 그의 눈에는 독일 대의민주주의는 정략의 목적으로 민주주의를 사고파는 요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했다. 이윽고 그는 "민주주의의 사기극이 의회”라고 세상을 향해 조롱했다. 그 또한 대의민주주의의 거대한“역설”을 보았던 것이다.백병훈 약력
건국대학교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